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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프로젝트가
꼭 지켜야 할 일

작가(김송희) - 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5기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꼭 지켜야 할 일

 - 김송희 작가 -


  청계천, 을지로 부근의 오래된 산업 단지인 공구 거리와 시장을 재개발해 그 위에 주상복합주거지구를 건설한다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청계천 을지로 보존 연대가 진행하는 을지로 투어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긍정적인 뉘앙스를 품고 들리기 시작한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나는 이전에는 오래된 곳을 보수 개선해, 좀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것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어둡고, 낡고, 오래되고 때문에 시민들의 기피 지역이 된 원도심의 상업지구를 보수하고 개선하고, '힙'하게 리디자인해 타 지역 사람들도 놀러 가고 싶은 동네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전주의 '청년몰'이나 뉴욕 하이웨이, 런던 도클랜드, 스웨덴의 말뫼와 같은 사례들 말이다. 청년의 활기와 아이디어를 구도심에 접목해 새로운 상업 지구를 만들어 내거나, 조선업의 메카였으나 기업들이 빠져나가면서 쇠퇴하는 도시를 친환경 산업 도시로 바꾼 말뫼 등의 사례가 특히 대표적이다. 말뫼 역시 도시재생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청년층 유입을 위해 대학교를 건설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들여온 그럴듯한 '도시재생'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잘못 적용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원도심을 파괴하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으며 공간이 쌓아온 역사를 배제하고, 그곳에 오랜 기간 숨을 불어넣었던 상인, 기술 노동자들을 내쫓는 이익형 재개발에 '도시재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도 발생한 것이다.  


도시재생이라는 허울

  앞서 소개한 청계천 을지로 보존 연대가 서울의 세운상가 재생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제조업체들이 모여서 '공구거리'를 형성해온 곳에 '아파트'를 짓는 것은 생산적이지도 않으며, 도시의 역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다. 청계천 을지로 보존 연대의 설명과 함께 을지로에 밀집한 공구거리의 곳곳을 투어하면서 '도시재생'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도시를 재생하다. 그것은 오래되고, 낡은 것을 무조건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와 의의를 유지하면서 그 위에 편리함과 동시대의 감성을 채색해야 하는 일은 아닐까.      


재개발해 새로 지은 아파트는 도시재생일까

  더구나 도시재생이라는 말과 함께 공간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위에 완전히 새로운 '신도시'를 짓는 일은 누군가의 터전과 일터를 빼앗을 뿐 아니라 그곳을 벗하여 살아가는 동, 식물을 내쫓는 일이기도 하다. 을지로 공구거리의 지붕을 덮은 천막 위에는 날카로운 빗금으로 크고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다. 동네를 걸어 다니는 동안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을 보았다. 천막 위의 구멍들은 모두 고양이들이 지붕을 뛰어다니다 낸 구멍이라고 했다.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던 공구거리의 기술자 아저씨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우리만 쫓겨나는 게 아니라 이 동네 사는 고양이들도 갈 데가 없어지는 거지. 이미 철거를 시작한 옆에 청계천 지구의 고양이들이 이쪽으로 다 몰려나면서 원래 여기 살던 고양이들과 영역 다툼이 심해서 밤마다 싸워요. 내가 밥 주는 애들도 낮에 보면 상처투성이야. 옆 동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거기 살던 고양이들이 다 이쪽으로 넘어오니까 고양이 과잉 지역이 되어 버렸다고. 근데 우리까지 나가면 쟤들은 여기서 파묻히거나 또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 거지.”

‘여기서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하는 50년 역사를 가진 기술자들을 내몰고 그 위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어떤 문화와 산업을 대표할 수 있을까. 거기서 이익을 얻는 것은 누구일까. 어떤 시민도 그 아파트를 문화로서 향유할 수 없는데 그 이름은 왜 도시재생 프로젝트인가.

 나는 올해 초 내가 일하고 있는 잡지사에서 동대문구 이문동 재정비 촉진구역의 고양이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아니, 재개발지구의 고양이 구조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인터뷰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이문동 재개발지구의 집들이 철거되기 시작했지만 그 동네에 원래 살던 고양이들은 '재개발'이 무엇인지 모른다. 때문에 무너지는 건축물과 포크레인에 파묻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들을 구출하는 작업을 수개월간 활동가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활동가들은 이 고양이들 역시 '이문동의 역사'라고 말했다.      


조치원읍의 가능성과 잠재력

  도시재생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조치원역 일원 도시재생 활성화 프로젝트의 설명을 듣고 내가 떠올린 것은 을지로, 청계천 지역의 천장 위를 날카롭게 찢어놓았던 고양이들의 발자국, 이문동 재개발 지역에서 위태롭게 떠돌고 있던 길고양이들의 뒷모습이었다. 세종시 도시재생전략계획 안에서 조치원역은 원도심에 해당한다. 다행히 세종시 도시재생전략계획 설명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상생'이다. 원도심의 활력을 증진하고 지역 경쟁력을 키우고 원래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 재생산업의 목적이다. 세종시 출범 후 이전된 직장을 따라서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전입한 인구는 상당하다. 조치원읍 역시 세종시 출범 후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으나 주변 행복도시에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2014년 이후 소폭 감소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지역은 고령인구 비율이 높으며 최근 4년간 고령인구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출생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다. 또한 저소득층 지원 대상자 역시 많은 편이다. 새롭게 조성되는 신도시와 달리 구도심은 오래됐거나 유지 보수가 되지 않은 다가구와 골목이 많아 상대적으로 집세가 저렴하다. 이 지역에 태어나 오래 산 노인 인구도 많지만 저렴한 월세를 찾아 이쪽으로 이동하는 인구 역시 많을 것이다. 또한 조치원읍은 세종시 출범 이후 전입 인구가 늘어나 구도심일지라도 인구 밀도가 전국 평균 대비 매우 높기 때문에 오히려 정주 환경은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몇 안 되는 주민 시설을 많은 인구가 공용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 건강을 위해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과 시에서 제공하는 학교 등을 통한 보육, 교육 혜택은 여타 지역보다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조치원읍에 거주하는 시민들 역시 지역에 아동과 여성, 노인을 위한 복지, 보육 시설, 문화 체육 시설 확충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행히 조치원읍은 앞서 언급했던 해외의 성공적인 도시재생 공간들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홍익대 세종캠퍼스와 고려대 세종캠퍼스라는 대학교가 위치해 20대 청년 인구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수도권을 비롯한 주변 광역 도시에서 이곳에 여행으로 찾아오려 할 때 교통편을 비롯한 이동 거리도 짧은 편이다. 잠재력이 충분히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지역 경제적으로도 '장소'만 만든다면 그것을 즐길 인구 밀집도 역시 높은 편이다. 문화 시설과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즐길 사람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대학가에 청년이 있지만 청년들이 즐길 공간과 콘텐츠가 없고,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프로젝트가 없다면 그것만 만들어 주면 그 지역은 알아서 활기가 돌게 되어 있다. 노령 인구가 높지만, 그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이 많고 마을 공동체가 작게나마 유지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외부 유출 인구들은 모두 입을 모두 '교육 시설과 보육 시설의 부족'을 지적하고 있으니, 그 또한 확충되면 될 일이다. 


  청년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공할 것, 노후화된 주거시설에 사는 거주민들이 집 밖에서라도 다른 문화를 즐길 수 있게 생활 문화와 주민 복지를 향상시키고 그러한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거점 공간을 제공할 것. 이것만으로도 조치원읍의 도시재생은 어느 지역의 성공 사례보다 크게 지역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재개발'이 아니라 도시재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부수고 그럴듯해 보이는 신식 빌딩을 세워봤자 원도심의 주민들은 그것을 비싼 값을 주고 이용하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장점과 역사를 활용해 그 안에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나 콘텐츠를 채워 넣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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