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Oct 25. 2024

변화하는 인간관계, 허무한 것일까?

내 인생의 영원한 친구는 어디에

몇 년 전 엄마가 고교 동창들과 연락이 닿아 한동안 동창 모임에 참석했던 기간이 있었다.


엄마는 친구들을 몇십 년 만에 만난다는 사실에 매우 설레하셨다. 모임에 참석해 친구들과 추억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던 것은 분명했다. 한동안 친구들 변한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로 가족들을 귀찮게 하셨으니까. 그런데 동창과 만남이 잦아지며 갈등이 생기기도 하면서 떨어져 살았던 세월의 간극을 느끼시는 듯했다. 몇몇 친구들과 해외여행도 다니시더니 어느 순간 만남이 뜸해지셨고, 더 이상 엄마는 새로운 동창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엄마를 지켜보며 문득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이들은 분명 내 학창 시절의 소중했던 사람들이고 인상 깊었던 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인데, 지금도 이들을 나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난 이들의 연락처도 모르고 연락을 하지 않은 시간은 20년도 더 지났다. 이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면 그립고 웃음이 나오지만, 이 기분을 당장 이들과 공유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없다. 연락처를 알아내려 든다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도 있고, 심지어 만날 수도 있겠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그들의 시간이 너무 많아졌고, 혹 그들이 내게 실망할까 두렵기도 하다.


고등학교 절친들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한때 삶의 어려운 문제를 털어놓으며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던 사이였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나둘 결혼을 하고 각자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만나면 여전히 반갑고 공유하는 추억과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듣는 것이 즐겁지만, 이제 이들과 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내 소중한 친구들이지만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던 당시 그 느낌이나 그 관계와는 분명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내 주변에는 매일 편하게 내 일상을 나누고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다른 친구들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영원한 친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친밀했던 관계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슬프고 허무해서 마음을 내주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변해가듯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도 당연히 변한다. 변하는 것을 붙잡고 연연하기보다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새삼 내 인생에 함께해 준 친구들이 참 고맙고 또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새로운 인연이 기대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과 '일', 함께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