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Nov 17. 2024

적당히 했는데... 이게 되네?

인생 잘 사는 비법


적당히 해

이 한마디 안에 얼마나 무한한 능력이 담겼는지...


첫 이직을 한 뒤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정직원이 되기 전 3개월의  평가 기간이 주어지는데, 아직 상사에게 눈에 띄는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칭찬은커녕 계속되는 지적에 나조차도 그간 쌓아온 내 경력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 자료를 작성할 때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돌아오는 평가는 좋지 않았다. 팀장님이 내가 쓴 자료를 아예 새롭게 다시 쓴, 매우 치욕스러운 상황도 있었다. 근심과 걱정 속에 야근은 계속하는데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내 안에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 들었다.


그날도 오전 중에 처리해야 하는 자료로 아침부터 부담감이 컸다. 상사는 새로운 내용을 원하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뿐이었다. 걱정에 파묻혀 출근하던 길에 문득 얼마 전 지인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내가 쏟아내던 회사 스트레스를 가만히 듣고 있다  담담히 자신이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도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과 스트레스 속에서  매일 전전긍긍하며 공부했지만 정작 집중이 잘되지 않아 진도가 나가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걱정, 근심을  늘어놓던 그녀에게  멘토 선배가 한마디 했다고 한다.

뭐 그렇게 완벽하려고 해?
적당히 해.


너는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완벽에 집착하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선배의 말에 언니는 '그러게. 내가 왜 완벽하려고 스트레스받고 있지? 완벽하게 하겠다고 완벽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단다. 마음을 바꾸자 오히려 집중력과 에너지가 회복되었고, 공부 효율이 오르고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게 됐다고.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곰곰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어차피 팀장님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팀장님 마음에 드는 자료를 만들 수는 없어. 새로운 아이디어 찾는 것이랑 기한 내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해서 끝내자.'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회사에 도착해 상품 설명서를 읽다가 새로운 내용을 발견했다. 더 나은 것이 없나 생각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바로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료를 구성했다. 놀랍게도 계획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팀장님에게 자료를 넘길 수 있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오래 생각해서 작성한 티가 나네요

팀장님은 고민 많이 한 것 같다며 자료가 좋다고 평가하셨다.

'아... 그러시구나...'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는 너무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잘하고자, 완벽하고자 하는 욕심이 오히려 결과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나 또한 더 좋은, 더 완벽한 결과를 내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았을 때, 오히려  집중력과 글쓰기 능력이 회복되고 모두가 만족하는 좋은 결과를 창출했다. 게다가 우리는 사실 무엇이 '완벽'한 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최근의 주요 관심사인 글쓰기에 대해서도 이 '적당히' 법칙을 적용해 본다. 와, 그간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쓰지 못한다는 괴로움에 내 글을 내놓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연했는지...


그리고 내 인생은 어떤가. 완벽한 하루, 완벽한 삶이라는 실체가 없는 기준에 갇혀 자책하고 체념하며 얼마나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혹사해 왔던지...

이젠 내 삶도 '적당히' 마법을 걸고 살아간다. 걱정과 근심이 마음을 지배할 때면 내 안의 완벽을 살짝 밖에 내놓는다. 그러면 신기하게 그 자리가 금세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진다.


여전히 나는 엉성하고 허황된 계획을 세우고 계획 대신 끌리는 것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계획표 상으로는 실패한 삶이다. 이때 계획표와 나의 하루를 비교하며 이루지 못한 것에 연연해하기보다, 그냥 어제 보다 더 나아진 내 모습 하나 발견하는 감사와 기쁨에 만족한다. 그런데 이렇게 힘을 좀 빼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줄고, 무엇을 시작하고 도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며 힘이 생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이런 '적당히' 마법으로 잘 살았다.

작가의 이전글 <이반 일리치의 죽음>:그의 죽음으로 죽음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