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다고 자주 말해도 괜찮은 걸까?

전 당신의 불편함에 공감합니다.

by SUR

<비폭력 대화>에 심취해서 읽고 있던 시절, 행사를 하루 앞두고 예상치 못한 차질로 일정 변경을 타 부서에 알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 잘못으로 발생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부서의 협조가 필요한 업무였기에 양해를 구해야 했다. 일상생활에서 비폭력 대화법의 효과를 확인해보고 싶던 차에 이 상황에 이 대화 방법을 활용해 보자는 생각을 하고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일정이 틀어져서 손해가 발생할 수 도 있고,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

는 내용으로 메일을 작성하던 중 '죄송하다'는 단어를 쓰는 것이 과연 맞는지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상대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우리 팀장님이 왜 저자세로 나갔느냐고 하시거나, 내가 일은 못하면서 그저 착해 빠지기만 했다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올라왔기 때문.


비폭력 대화법에 따르면, “당신이 처한 상황, 당신의 욕구가 좌절된 것에 대해 내가 이러한 감정을 느낀다”라고 내 감정을 책임지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이 순간에 죄송하다는 표현 말고 내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는 없어 보였다. 죄송하다고 써? 말어? 를 한참 고민하다가 아니, 메일 하나 보내는데 내가 이렇게 까지 죄송하다는 표현에 집착해야 하는 것인가?! 죄송하다는 표현은 자유롭게 쓰면 안 되는 표현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는 자주 해도 좋은 말 같다. 상대에게도 듣기 좋고, 특별히 내 감정이 깎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이들 표현에는 말하는 사람이 ‘잘못했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자주 말하면 안 되고, 내 잘못이 명확한 경우에만 말해야 할 것 같다. 실례로 국가의 수장이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 법적인 공방이 있는 사건처럼 단어 하나가 매우 민감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는 “죄송하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가 자칫 잘못을 인정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죄송할 일을 만드는 것을 보니 능력이 부족할 것 같고, 능력이 부족하니 스스로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이는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갖고 있었던 생각이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할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내가 잘못해서, 틀려서, 부족해서 죄송하다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죄송하다는 단어를 들으면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연상 됐다. 상상 속 사람은 힘이 없는 약자였고, 자연스레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내 모습과 오버랩 됐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죄송하다는 말의 빈도와 자존감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오히려 그동안 자존감이 낮았기에 그 말에 지나치게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요즘에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데 크게 거부감은 없다. 죄송하다는 말로 내 자존감이 깎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존재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낮아지는 모양새라 해도 진짜 낮아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못한 것이 있다면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높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죄송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면 혹시 사람들이 나를 '잘못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다. 특히 회사나 업무를 보는 상황에서 이런 고민이 자주 올라왔다. 게다가 이 메일은 팀원들이 대외적으로 실수하는 모양새를 매우 싫어하고 평가자 위치에 있는 상사도 참조해야 하기에, '죄송하다'는 표현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됐던 것.


결론적으로 난 죄송하다고 적어 메일을 보내며 복잡한 고민을 털어버렸다.




‘죄송하다’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하다’라는 뜻이며, ‘미안하다’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란 의미라 한다. 그러면 내가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불편한 마음이 든다는 뜻인 걸까?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불편한 마음이라는 것. 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들까, 물론 내가 한 어떤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불편한 상황에 처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느끼는 불편함에 공감해서 내 마음도 같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죄송하다는 표현이 상대가 처한 상황이나 상대가 느끼는 마음에 공감한다는 표현으로 본다면, 죄송하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 표현이 어색한 상황은, 상대가 불편하지 않은 상황인데 내가 오버해서 죄송하다고 말했을 경우인 것 같다.


그럼 '죄송하다'라고 자주 말해도 괜찮은 것일까?

지금까지의 경험과 고민, 자아 성찰(?) 속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죄송하다'는 말을 생각 없이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공감’의 의미로 자주 쓰는 것은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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