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아와 당신의 판타지는 다른 선상에 놓여있다.
유학을 준비할 때 종종 들었던 소리가 있다.
"그러지 말고 시집이나 가!"
아니 뭐 시집은 혼자 가나?
그리고 당신이 뭐 간데 나의 일생 중대사를 그렇게 쉽게 논한단 말이야?
물론 나를 걱정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기는 하다만...
교대에 진학하고 나서는 심심하면 한 번씩 듣는 소리가 "일등 신붓감이네~"였고.
아니 저는 "일등 신붓감" 하려고 교대에 온 게 아닌데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게 천성이고 그때 당시에는 더 어렸던 터라 더더욱 아무 말 못 하고 매번 하하 웃고 말았지만 도통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제 자아실현이 당신의 일등 신붓감 기준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이유가 뭔가요?
교사라는 직업은 참 역사가 깊은 직업 중에 하나이고 그만큼 많은 편견도 가지고 있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겠지만, 최근의 10년간의 트렌드는 '일등 신붓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맞벌이도 하고, 방학이 있고, 일반 직장보다 조금 이른 퇴근시간에 육아휴직이 자유롭다는 조건. 거기에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이 주는 소위 아이들을 잘 키우고, 다정하고, 섬세할 것이라는 이미지. 평생을 바른생활형 인간으로 살았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 모두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게 바로 '일등 신붓감'일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해서 네덜란드인 친구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네덜란드에도 교사에 대해서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고 한다. 아이를 가르친다는 직업이 주는 느낌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내 자아나 직업적 전문성은 무시되고 그저 '아내', '엄마'가 될 수 있는 조건들만 나열된다. 본인들에 맞춘 '일등 신붓감' 기준에 맞춰 내 조건을 요리조리 계산하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 인생을 결론내린다. 교사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내게는 일종의 프레임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건 아이들을 예뻐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내 일을 하고 그리고 언젠가 내가 가고 싶던 유학을 떠나는 거였는데, 뭔가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니 하루빨리 누군가를 만나 결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분명 별생각 없이 뱉었을 그 말들이 내 자아를 뿌리부터 흔들리게 한 것이다.
나라고 갈등하지 않은 게 아니다. 지금 한국을 떠나면 내가 누군가를 만날 때를 놓치는 건 아닐까,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왔을 때 내가 다져온 기반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그간 쌓아왔던 나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달라지는 마음을 붙들고 다시 또 붙들어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데 남이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한마디는 기껏 고요하게 만들어 놓은 내 마음에 끝없는 잔파동을 만드는 것이다.
아마 그 말에 혹해서 유학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고, 맞지 않는 자리에서 행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의 자아는 '선생님'과 '유학생'이고, 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게 내가 지금 추구하는 나의 삶이다. 사람의 미래는 모르는 법이니 나도 언젠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순간이 올 수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렇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싶지도, 그런 프레임에 나를 끼워 맞춰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때로는 그랬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도 아니면서, 그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삶을 강요하고 내가 가진 이미지대로 그 누군가를 재단했던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고군분투하던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니 이게 얼마나 오만한 행동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참 어리석어서, 이렇게 당하고 나서야 잘못된 걸 안다.
우리에게 허락된 행동은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는 것뿐이다.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게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사회적 감수성 중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