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Jan 18. 2021

우리 반 아이가 빚을 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과거와는 또 다르다.

'ㅇㅇ이가 제 친구한테 돈을 갚아야 하는데 연락이 안 돼요.'


화요일 오후 8시쯤이었다. 퇴근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문자가 왔다. 우리 반 아이에게 돈을 빌려줬고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담임이었고, 초등학생이 엮일 일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황이라 해당 번호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의 목소리는 앳되었다. 타 지역의 중학생이라고 밝힌 상대방은 친구가 우리 반 아이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받지 못해 자신의 옆에서 울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친구는 ㅇㅇ이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자신도 돈을 빌렸고, 당장 갚지 않으면 친구의 상황이 곤란해진다고 했다. 


모든 게 황당했다. 지금 듣고 있는 이야기도, 전화를 건 사람도, 이 상황도 다 황당했다. 다급히 아이의 안전부터 파악하기 위해 우리 반의 ㅇㅇ이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아이와 학부모 둘 모두 나란히 연락이 닿지 않았고, ㅇㅇ이의 친한 친구들에게도 모두 전화를 걸어보며 혹시나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발을 동동 굴렀다. 뒤늦게 그 아이의 친한 친구 하나가 ㅇㅇ이와 연락이 됐다며, 아이는 집에 잘 쉬고 있다고 말했다. ㅇㅇ이는 여전히 나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어쨌든 아이가 안전하다니 내일 학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하고 상황을 일단락 지었다.


다음날 학교에서 들은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본인이 기존에 알고 있던 중학생에게 만 삼천 원을 빌렸는데 갚지 않았고, 그래서 내게 연락이 간 거라고 했다. 오늘 돈을 보내주기로 했으니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돈을 빌려줬다던 중학생은 이제 볼 일은 다 본 듯 내 연락에 답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왜 ㅇㅇ이가 만 삼천 원을 타인에게 빌려야 했는지, 그 학생이 어떻게 내 번호를 알게 되었는지 오리무중이었지만 아이는 같은 말만 반복하며 대화를 피했다. 우선 아이에게 알겠다고 한 후 해당 사실을 부모님과 이야기해도 될지 물었고, 아이는 상관없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통 친구에게 가버렸다.


여전히 미심쩍은 상황이었으나 동학년 선생님들과 의논 끝에 더 이상 내가 참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일이 일단락되었더라도 학부모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필요를 느꼈다. 어렵사리 전화가 닿은 학부모는 자초지종을 듣고도 한참 간 별 말이 없더니 귀찮다는 듯 한마디 했다.


"왜요? 저희 애가 누구한테 돈 빌리고서 안 갚을 애가 아닌데요."


초등학생이 빌리고 사용하기엔 조금 큰 금액 같아서 지도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에는 더 귀찮은 목소리로 "알겠어요." 하는 대답만 돌아왔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학생도 학부모도 괜찮다는 상황에 나는 더 이상 주제넘게 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상황이 잘 마무리되었다는 데 위안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중간놀이 시간에 조회를 마치고(그렇다, 아직도 교장선생님 목소리가 울리는 애국조회가 존재한다.) 교실로 돌아왔는데, 행정실에서 전화가 왔다. 어떤 사람이 우리 반 ㅇㅇ이에게 돈을 빌려 주고받지 못하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다시 한번 머리가 띵, 해져왔다. 받은 번호로 연락을 해보니 이번엔 성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금액의 단위가 달랐다. 자신은 ㅇㅇ이에게 돈을 빌려준 세명의 사람을 대표해서 전화를 했고, 한 명은 10만 원대, 다른 한 명은 20만 원대, 마지막 사람은 100만 원대의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중 한 명은 지난주의 만 삼천 원을 빌렸다던 그 중학생이었다. 그랬다. 지난주에 한 ㅇㅇ이의 해명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더 이상 이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진 나는 어쨌든 성인이라는 그 사람에게 따져 물었다. ㅇㅇ이와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줄 생각을 하며, 금액이 어떻게 백 단위가 나올 수 있는지. 이제까지 모두 황당한 일의 연속이었지만 더 황당한 대답을 들었다. 그 사람들 모두 ㅇㅇ이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며, 카카오 스토리를 통해 알게 되었고, 기한 내 빌려준 돈보다 많은 돈을 갚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받기로 하며 돈을 빌려줬다는 대답을 들었다. 10만 원을 빌려주면 약속된 날, 시간까지 15만 원으로 갚고, 약속 시간까지 갚지 않으면 시간당 5만 원씩 이자를 받는다는 식의 정말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이미 수업 시작 시간이 훌쩍 넘었기에 우선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끊고, 어찌 지나간 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업을 마친 후 ㅇㅇ이를 불러 조용히 상황을 물었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들은 내용이 사실이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부탁해 은행 계좌를 만들었고, 카카오 스토리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 그 계좌로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 돈은 주로 용돈으로 쓰거나 원하는 물건을 사는 데 사용했고 빌린 금액 중 얼마는 갚았으나 다 갚지 못해서 그들이 학교까지 연락을 한 거라고.


우선 아이에게 그 사람들에게 오는 연락을 받지 말라고 일러둔 뒤 내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교감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렸다.(학교 폭력이나 아동 학대가 의심할만한 상황이 발생하면 관리자에게 알리고 경찰에 의뢰해야 한다. 요즘은 학교마다 전담 경찰관이 있어서 학교와 경찰이 공조해야 할 일의 경우 그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왜 만 삼천 원 사건이 터졌을 당시 미리 보고하지 않았냐고 한 소리를 얻어 들은 후 학교 전담 경찰관에게 상황을 의뢰하기로 했다. 연락을 받은 경찰관이 바로 학교에 도착하고,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학교 전담 경찰관에게 상황을 설명해보았지만 도통 세 분 모두 카카오 스토리가 중간에 끼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결국 나는 세분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프레젠테이션까지 만들어 이리저리 뛰며 설명을 해야 했고, 이야기 끝에 다음날 아이의 통장을 가지고 학부모가 학교에 방문하기로 했다. 교사의 연락은 거의 받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학부모는 경찰이 연락하자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협조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학부모를 통해 통장 내역을 전달받았고 학생의 동의를 받아 핸드폰 내에 그들과 연락한 내역을 확인했다. 경찰관의 소견으로는 사기꾼이 짜 놓은 판에 아이가 걸려든 것 같댔다. 그들은 학교 폭력 등의 법망을 교묘히 빗겨나갈 수 있도록 아이를 협박하기보다는 꾸준히 닦달하며 압박을 가했고, 돈을 돌려받을 때에는 현금으로 송금받기보다는 자신들이 사야 할 물건을 대리 결제시키는 등의 방법을 활용했다. 통장 내역을 확인한 결과 ㅇㅇ이가 실제 빌린 돈은 60만 원 대였고 갚은 돈은 40만 원 대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초등학교에서 일한다.) 경찰관은 아이가 그들이 요구한 고리대금 대로 돈을 보내지도 않았기에 금융법 위반으로도 볼 수 없고, 이들의 언행이 학교폭력에 위배되지도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다. 최소 일주일 이상 아이를 괴롭혔을, 그리고 그 중간에서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던 그 사기꾼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상황은 그대로 일단락이 되었다. 항상 연락이 닿지 않던 학부모는 이번에도 내게 일언반구가 없었고, 나중에야 아이를 통해 그들의 연락을 모두 무시하고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발령을 받은 첫 해였다. 가장 의욕이 넘쳤고 뭐든 쉽게 풀리는 것이 없었던 해였기에, 나의 마음 한편엔 괜히 이게 내가 학생을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인가 하는 자괴감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그런 나에게 내 탓이 아니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지만, 그 무엇도 내 기분을 보듬어주지는 못했다. 삼 개월쯤 후에 뉴스를 통해 10대들 사이에서 카카오 스토리를 통한 돈거래가 성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런 일을 겪은 교사가 나뿐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나는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오랜 자괴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해는 유독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한 해였다. 나의 머릿속은 꽃밭이었지만 현실은 불구덩이 같았던 바로 그 해. 신규 발령 교사의 미숙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해당 학년의 아이들이 유별났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평생 못 잊을 첫 담임 생활을 보냈다. 나란히 담임을 맡았던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봐도 내가 온갖 사건 사고를 겪은 것으로는 단연 일등이었다. 덕분에 이후로는 무슨 일을 겪어도 제법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교사들이 과거의 교사들과 다른 것처럼 요즘 학생들도 과거의 학생들과는 다르다. 학부모는 말할 것도 없다. 덕분에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덩달아 기존의 상식을 초월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의지와는 별개로 이제껏 내가 생각해온 교사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어쨌거나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에 위안 삼아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내가 교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