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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1. 2021

유학 휴직이 허가되고 눈물이 늘었다.

감정은 사람들만의 일인지라 그것과 관계없이 비행기는 뜨고 또 내렸다

유학 휴직 허가 공문이 왔다. 나의 유학 휴직은 그렇게 온 학교에 공식화되었다.


고작 6개월이 못되게 있었던 학교였기에 오자마자 휴직을 낸다는 후배 교사가 얄미울 만도 하련만, 그새 정든 선생님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내 앞길을 축하해주셨다. 나는 매 순간 눈물이 가득 담긴 눈을 하고 있었다. 학기말 회식 자리를 빌려 전 교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던 때, 마지막 근무를 마친 후 선생님들이 따로 마련해준 송별회, 이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깊은 마음을 나누었던 선생님들과의 만남에서도. 매 순간 나는 뒤돌아 눈물지었다. 왜 사람은 함께 있을 때의 행복함보다 떠날 때의 아쉬움을 더 깊이 느끼는 걸까, 이전에 더 잘하지 못했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모두 눈물이 되었다.


타지에 있는 친구들은 주말을 틈타 틈틈이 만나 인사를 전했다. 한 학기만 지나면 다시 한국에 들어올 거라고 자신하면서도 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우리는 할 말이 없어진 후에도 시내 주변을 빙빙 걸었다. 대부분이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껏 인연을 이어온 친구들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이렇게 멀리 떨어져 본적은 처음이라 우리는 실감이 나지 않다며 웃다가, 서로를 부러워하다가, 또 실없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헤어질 시간을 미뤘다.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직장을 잡고 늘 같은 관심사로 엮여 항상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던 우리의 삶이 이제 조금은 각자의 길을 가는구나 싶어 나는 또 글썽거렸다.


한국에서 맞이한 나의 공식적인 마지막 송별은 버스터미널에서였다.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 부모님 역시 새벽같이 일어나 나보다 더 부산스럽게 준비했다. 직장 사정상 공항까지 함께할 수 없는 부모님은 나와 버스터미널까지 함께했고, 난생처음 타보는 프리미엄 버스 안에서 나는 멀어지는 버스를 마지막까지 바라보는 부모님을 보며 또 그렁그렁해졌다. 키가 높은 버스에 앉아 아직 잠에서 덜 깬 부모님을 바라보는데 두 분은 또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이제 내가 두 분의 보호자 노릇을 해 드려야 하는데 내가 이렇게 떠나도 괜찮을지. 이번 눈물은 맺히는데 끝나지 않았고 나는 제법 긴 시간을 그렇게 버스에서 혼자 울었다.


나의 눈물은 비단 내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는 아쉬움에서만 올라오는 것은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주변에 유학을 갈 거라며 큰소리치고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 유학 휴직 허가까지 받아내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 오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에게 해외란 그저 연가를 조각조각 모아 떠나는 여행지였지 내가 길게 살 곳도, 공부를 할 곳도 아니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나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주던 이들을 떠나 아는 이 하나 없는 해외로 떠나야 한다는 것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일이었다. 항상 나를 지켜주던 부모님 품을 벗어나서 잘 살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뒤돌아 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하나씩 볼 때마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아 졌다.


공항은 감정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사람들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공간이었으며, 여행을 떠나는 누군가의 벅참도, 떠나는 이의 아쉬움과 돌아온 이의 행복함도 가득 차 있는 곳. 감정은 사람들만의 일인지라 그것과 관계없이 비행기는 뜨고 또 내렸다. 그래서, 내 감정이야 어떻든 내가 탄 비행기도 정해진 일정대로 떴다. 비행기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의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반전되었다. 아마 비행기가 뜨는 순간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아서가 아닐까. 아무리 아쉽고 슬퍼도,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공항에서 마신 커피 탓인지 아니면 탈것에서 잠을 제대로 못자는 예민한 성미 탓인지 나는 피곤하지만 또 잠들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로 열시간이 넘는 비행을 버텼다. 라트비아까지 가는 직항이 없는 탓에 나는 러시아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했다. 내가 처음에 탔던 비행기 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인이었는데, 러시아 공항엔 나에겐 생소한 모습의 사람들뿐이었고, 더 해서 라트비아행 작은 비행기 안에 동양인은 한 손의 손가락으로 세고도 남을 숫자였다. 나는 이곳에서 소수자였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30분쯤, 8월 말의 이곳은 여전히 밝다. 처음 겪어보는 생경한 현상은 내가 느끼는 이질감을 극대화시켰다. 비행기가 다시 땅을 밟았고, 나는 그렇게 라트비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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