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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1. 2021

세 번의 2021년 1월 1일 00시 00분

한국, 라트비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2021년 1월 1일

방금 첫 번째 2021년 1월 1일 00시 00분을 맞이했다. 한국이었다. 지금 내 몸이 어디에 있건 결국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유튜브를 통해 언컨텍트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친구와 행복한 2021년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눴다. 새해 첫 노래가 한해의 운을 결정한다기에 함께 있지는 못해도 다 같이 같은 노래를 들었다. 우리가 선정한 올해 첫 노래는 이기적이게도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 나가'였다. 노래 가사도 그렇지만, 이 노래는 내가 한참 기운 넘치던 20대 초반에 나온 노래이기에 언제 들어도 정말 뭐든 이루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해 준다. 친구와 같은 시간대를 사는 척 대화를 이어가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한 낮이다. 나는 하늘에 동그랗게 떠있는 해 아래에서 새해 소망을 읊는다. 


한국의 2021년 1월 1일 00시 00분에서 일곱 시간이 지나니 이제 라트비아의 2021년 00시 00분이다. 라트비아에 있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통해 새해를 축하한다. 못 본 지 이제 고작 3개월인데, 서로가 사무치게 그립다. 일 년이 다 되도록 못 만난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더 그리운 기분이 드는 것은 가까운 듯 멀리 있고 곧 만날 듯하면서도 못 만나는 감질나는 상황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서로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토로하고 길었던 2020년이 끝남을 기뻐한다. 2021년이 왔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다시 만날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 모두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었다.


이번에는 나 혼자 맞이하는 오스트리아의 2021년 00시 00분이다. 내 방은 고요하고, 핸드폰은 소란스럽다. 한국과 라트비아에 있는 이들은 나의 세 번째 새해를 잊지 않고 함께 축하해준다. 혼자 새해 첫 날을 맞이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다. 오히려 홀로 있어서 좋다. 두 번의 새 해 첫 순간을 지인들과 축하한 나는 이제 나 혼자만의 새해를 만끽해본다. 방해받지 않는 생각이란 걸 해본다. 영원할 것 같았던 유학기간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일 년 반 동안 타국에서 머무른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생각해본다. 나의 상념은 앞으로는 희망찬 앞날을 그린다.


2021년은 내 마음속 우선순위대로 찾아왔다. 새해를 세 번 맞이하니 세 번 다 다른 방법으로 내 입맛에 맞게 즐겨볼 수 있어서 좋다. 어찌 생각하면 매일 돌아오는 00시 00분이겠으나,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지인들과 호들갑을 떨어보니 다소 침체되었던 내 삶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준다. 매일 매 순간을 이렇게 특별하게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외에 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내가 더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사는 소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 가끔 나는 새벽에도 눈을 벌겋게 뜨고 핸드폰을 쳐다본다. 내가 적을 두었던 나라가 늘어날수록 내가 맞춰야 할 시간대도 늘어난다. 내가 이들을 잊지 않은 만큼 이들 역시 나를 잊지 않고 때때로 내 시간에 맞춰 살아주는 걸 알기에, 나 역시 기쁜 마음으로 응한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2021년인데, 나는 벌써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오스트리아 생활을 마무리한 뒤 라트비아로 돌아가 새 학기를 시작하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동생과 유럽 여행도, 석사 논문을 완성해 대학원 졸업도 해야 한다. 이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교직 생활을 시작할 테니, 이미 내 인생의 큰 이벤트들로 캘린더가 가득 메꿔진 2021년이다. 사는 게 계획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보니 2021년에도 또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뜻밖의 행복함도 있겠으나 그 어떤 순간이든 소중한 내 삶의 한 페이지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세 번이나 맞이한 2021년 00시 00분 매 순간 브런치에 글을 썼으니 아마 올해는 브런치와 함께하는 가득 찬 해를 보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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