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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2. 2021

걱정 마, 한국 경제 엄청 튼튼해 보여

한국 밖의 시선과 한국 안의 시선은 많은 차이를 보였다.

"뭐? 아니, 걱정하지 마, 한국 경제 엄청 튼튼해 보여"


교환학생을 온 후 나는 동유럽의 문화적 기술에 대한 수업을 수강했다. 비즈니스나 마케팅, 인터내셔널 미디어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목이었기에, 국가들의 전반적인 문화 중 비즈니스 문화에 제법 비중을 두었다. 오스트리아에 위치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시간대가 정 반대인 다른 나라의 학생들도 수강하는 수업이었기에 수강하는 학생 수만 60명이 육박하는, 내게는 제법 큰 수업이었다.


해당 과목을 시작하기 전 교수님은 미리 몇몇 국가를 선정하여 모든 학생 각자에게 발표나 토의 진행자 등의 역할을 고를 수 있게 했고, 나는 체코에 대한 발표 후 소 그룹으로 진행되는 토의의 진행자를 맡게 되었다. 해당 수업은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이었고, 체코에 대한 발표와 토의는 가장 마지막 차례였다. 긴 시간 동안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수업답게 내가 20분 간 토의를 진행하는 순간이 왔을 때 학생들은 다들 지쳐서 별 말이 없었다. 결국 2-3명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형세가 되었고, 내가 발언하는 시간은 자연스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었기에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문화와 유럽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나는 평생을 학교에서만 살아온 사람이라 회사 생활이나 비즈니스 상황에 대한 큰 지식은 없었기에 내 설명이 잘못된 지식을 줄까 두려워 내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엔 체코와 한국의 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비교를 시작했고, 회사 생활, 회식 문화, 야근 등에 관한 질문도 받았다.(이 날 수업에서 발표가 진행된 국가 중 일본이 있었다. 일본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한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는지 물었었다.) 체코와 비슷하게 한국도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했더니 많은 학생들이 의문을 표시했다. 나는 한국 전쟁 이후 급격히 발전한 탓에 여전히 사람들 머릿속에 남아있는 '힘들었던 시절'의 기억과 IMF를 겪은 후 우리의 머릿속에 심어진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20분간의 토의가 끝나기 전 한 학생은 자신이 보기에 한국의 경제는 아주 튼튼해 보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IMF가 터질 당시 나는 7살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많은 가정이 경제 위기의 여파로 신음하고 있었다. 매일 아빠 무릎에 앉아 함께 보던 9시 뉴스는 온갖 기업들의 부도 이야기와 가족 해체, 동반 자살 등의 기사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와 보던 드라마에서도 심심하면 부도 이야기가 나왔다. 사장님네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리에 등장인물 모두가 사색이 되곤 했고, 오죽하면 나는 엄마에게 "엄마, 부도가 뭐야?"라고 물었었다. 그때 IMF의 충격은 우리 가족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지만, 당시 7-8살이었던 내게도 그때 우리나라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체감한 기억이 남았다. 내 윗세대의 머릿속에는 더 큰 충격을 남겼음을 두말할 것 없다. 이후 내가 배운 사회 수업에서 IMF와 금 모으기 운동은 우리나라 경제사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한가운데의 아주 깊은 '위기'쯤 되는 큰 획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나 역시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을 품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월급이 나오는 교사가 무슨 경제 걱정이냐고 물을 지 모르지만, 나라가 없으면 길거리에 나앉는 게 공무원인지라 다른 직장인보다 경제 걱정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경제 위기가 가족의 운명, 그 안에 있는 최약체인 아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나는 더 그렇다. 조금의 차이라면 직장인이 '우리 업계'걱정을 한다면 우리는 전반적인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을 품고 산 달까.


늘 경제가 걱정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나와 달리 내 친구들은 무사태평으로 보이곤 했다. 자신의 나라 상황도 똑같다고 늘 이야기했지만, 동시에 경제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심드렁해 보였다.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 EU의 큰 축을 맡은 독일, 작지만 부강한 나라 네덜란드. 심지어 옆 나라 중국에서 온 친구도 '우리나라 경제도 별로 안 좋아~'라고 하면서도 별 걱정은 되지 않아 보였다. (라트비아 사람인 친구는 나처럼 걱정이 많아 보였다.) 아마 진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여파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몰라서가 아닐까. 내가 볼 때 튼튼해 보이는 나라들도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다 경제가 안 좋아 보인다니, 나라 안에서 보는 모습과 밖에서 보는 모습이 다른가보다 하기도 했다.


'한국 경제 튼튼해 보여'라는 말은 긴 수업으로 지쳐있던 나의 기분을 반전시켰다. 그냥 지나가는 한 학생의 말일뿐이었는데, 그 말이 주는 안도감이 엄청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금 삐뚠 마음도 들었다. 한국 경제가 튼튼해 보인다고? 너희는 이 순간을 위해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는지 모를 거야. 회사와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의 윗세대와 지금도 어떻게든 살아남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우리 세대의 고충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코로나로 코스피가 폭락했던 3월도 동학 개미 운동으로 잘 이겨낸 것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의 경제는 튼튼해 보인다. 저 수업시간처럼 유럽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높아진 위상을 느낄 때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긴 했구나, 를 실감하곤 한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을 떠나고 나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를 깨닫게 되는 일이 잦다. 리가 시내를 바라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삼성과 LG로고,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처에 대해 떠들어대는 외국 뉴스들, 해외 한복판에서도 종종 들려오는 Kpop 등.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마 우리의 경험에서, 그리고 항상 앞날을 대비하는 민족성에서 나온 걱정일 것이다. 나는 전공자가 아닌지라 우리나라 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든지 무언가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똑똑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믿고 나 하나쯤은 그냥 내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만 품고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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