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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Jan 07. 2021

환경 보호는 부자들만 할 수 있나요

모두가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은 없나 

유학을 오고 가장 감명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환경 보호가 생활화되어있는 유럽인들의 생활이었다. 이미 유럽에는 기후 변화, 탄소 배출에 대한 문제점 인식이 잘 이루어져 있었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실천하는 삶이 많은 이들의 생활 속에 정착되어있었다. 청소년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그들의 스타였다. 


독일, 네덜란드, 미국에서 온 나의 친구들은 모두 채식주의자였고, 더 나아가 비건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이들은 새 옷이나 신발을 사기보다는 세컨드 핸드 샵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구제 샵쯤 되어 보이는 가게에 가서 옷과 신발을 샀으며, 식료품을 살 때, 카페를 갈 때에도 제로 웨이스트 상점을 검색해 찾아갔다. 개인용 물통을 소지하는 건 기본이고, 사소한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돈을 더 내더라도 플라스틱은 피했다. 카페에서 어쩔 수 없이 받은 일회용 컵은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져갔다가 어떤 식으로든 재활용했다. 평소에도 백팩에 작은 반찬통 같은 걸 가지고 다니며 혹시나 음식이 남으면 꼭 거기에 포장해갔다. 걸어서 삼사십 분 내의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녔다. 이들의 환경보호는 소비에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옷은 깨끗이 정리해서 기부했고, 집 주변에 재활용시설이 되어있지 않자 먼 길을 걸어서라도 분리수거를 했다. 이들은 가능하면 카페의 냅킨 한 장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국의 작은 도시에 살며 환경 보호란 '일회용품 줄이기'정도밖에 몰랐던 내게는 정말인지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누군가에게는 내 친구들의 생활이 익숙했었겠지만, 이전까지 환경 문제에 매우 무지했던 내게는 이제까지 나의 생활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다소 옛날 사람 같던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도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덩달아 고기 섭취량을 엄청나게 줄였고, 많이 걷고, 소비에 신중을 기했다. 나의 사소한 노력 하나하나가 너무 뿌듯해서, 환경 보호나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더 배우고, 생활화하고,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교환학생을 오며 나는 '지속 가능한 개발'과목을 수강하기로 했다.




신세계 같았던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의 생활화에 대한 감동은 예기치 못한 데서 깨졌다. 교환 학생을 온 후 수강한 지속 가능한 개발 과목이 내게 생각지도 못한 반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미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해 많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지속 가능한 발전'과 떼 놓을 수 없는 것이 'Digitalization'이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디지털화' 정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디지털 분야를 발전시켜서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요즘 핫한 우리나라의 그린 뉴딜 정책처럼 주요 내용은 재생 에너지 개발, 스마트 그리드 망 구축, 효율성 있는 에너지 사용, 에너지 분산화와 생산자와 소비자가 결합된 프로슈머(prosumer) 등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여기까지는 참 좋은 생각이구나 했다. 


그런데 이들의 지속 가능한 개발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수업의 자료 화면에서는 환경오염, 자원 낭비의 극적인 예로 개발 도상국의 사진을 쓰고, 주로 문제로 꼽는 탄소 과다 배출, 데이터 낭비를 하는 국가로는 중국 등 신흥국들이 꼭 등장했다. 내게 일차적인 반감을 불러온 것은, 세계 대전 등을 통해 제국주의, 식민지화로 국제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개발 도상국의 자원 착취와 신흥국의 값싼 인건비를 통해 부를 축적해온 유럽의 주요국들이 슬그머니 환경오염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씁쓸했다. 


수업을 들어보며 두 번째 반감이 일어났다. 이 수업 속에 개발 도상국이나 신흥국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 내용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스마트 기기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어떤 자연환경을 이용해 재생 에너지를 개발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모든 것은 이들의 수준에서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한정되었다.


개발 도상국들이 자신들의 자원을 채취해 팔며 그들의 땅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몇몇 신흥국들이 에너지를 남용하는 것도 인정한다. 그들은 과거의 포식자들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 저렴한 가격에 고효율을 내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리라. 삶의 질을 높이기와 지속 가능한 개발을 동시해 하는데 필요한 기술도 충분한 자본도 없었을 테니까.


나는 개발 도상국의 사람들이 나태해서 스마트 기기를 충분히 가지지 못한 것도, 신흥국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싶어서 에너지를 남용하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혹시 개발 도상국과 신흥국들을 위해 무얼 하고 있는지 물었다. 내게 돌아온 것은 각종 지원을 통해 개발 도상국의 스마트 기기 보급률은 올랐지만 다들 소셜 미디어에만 사용했다는 동문서답의 답변이었다. 스마트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었으니 소셜 미디어만 사용하겠지. 나는 더더욱 씁쓸해졌다.


내가 기대한 수업은 이게 아니었다. 나는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논의하길 바랬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률을 어떻게 높일지, 사용 방법은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신흥국들이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재생 에너지는 무엇일지 제대로 연구하고 함께 발전해 나갈지. 이러한 노력 없이 만져본 적도 없는 각종 스마트 기기들을 이용해서 환경을 보호하거나,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싶은 너희의 욕심이야 어찌 되었든 에너지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움직임을 멈추라는 일방적인 그들의 주장을 듣기 위해 그 과목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부의 끝은 환경운동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발언인가 했었다. 그런데 지속 가능한 개발 수업을 수강한 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은근슬쩍 개발 도상국의 상황은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논하는데 모자라,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 도상국과 신흥국들을 무지한 환경 오염자들로 비난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말 일 것이다. 


환경 보호가 부자들의 이야기로 멈춰있는다면, 여전히 지구의 미래는 없다. 모두가 함께하는 환경 보호가 지구촌에 정착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요즘 한국 내에서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더 나아가 비건이 되고자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채식 주의자가 되기를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기에, 그분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나 역시 그간 습득한 환경 보호를 위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개개인의 노력이 무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모든 유럽이 지속 가능한 개발을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들었던 수업은 그런 성향이 강해서, 웬만하면 가만히 있는 내가 교수님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는 정도였다. 심지어 나는 파이널 과제를 하며 마지막에 이러한 나의 생각을 적었다. 내 의견이 그분들께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다른 학생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온라인 수업이라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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