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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4. 2020

라트비아에서 보냈던 지난 봄 나의 일상

건강한 유학생활의 모범사례

오스트리아에서 나의 데일리 루틴 주제가 '느긋하게 살기'라면 지난봄 라트비아에서 가졌던 나의 데일리 루틴의 주제는 '건강해지기'였다. 어디가 아프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라트비아 락다운 기간 동안은 내 건강을 살뜰히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실은 우리 집에서 언제나 나는 건강이 가장 걱정되는 사람이었다. 아빠를 닮아 예민한 성미라든가, 스트레스받으면 입맛이 없고 살이 쭉쭉 빠지는 것, 잠자리가 조금만 불편해도 잘 못 자고, 맛없는 음식은 안 먹는. 우리 집 일등 까탈 쟁이였다. 게다가 내가 아기일 시절(지금은 성당을 열심히 다니시는 우리 아빠가 사주나 신점 보는 걸 질색하신다.) 엄마가 본 사주에서 나는 건강만 조심하면 다 잘 풀린다고 했단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기초체력이 약한 건 잘 알고 있어서, 기회가 주어진 김에 좀 더 지구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가 3-4월쯤 막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고 해도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던 시기라서 라트비아의 한강 다우가바 강 옆에서 조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타고난 몸이 워낙 뻣뻣했기 때문에 준비운동 겸 스트레칭도 쭉쭉해주기로 했다. 어쨌든 이때도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주로 많은 시간은 공부를 하면서 보내야 했고, 영어실력을 더 키우고 싶어서 영어 듣기 시간을 많이 늘리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자유시간이 많아지면 자꾸 늦잠 자 버릇하다가 점점 낮과 밤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한시 이전에는 꼭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산책 후 따뜻한 집에 돌아왔을 때 낮잠에 들기 쉽고, 그러면 밤에는 잠을 못 자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 때문에 역시 커피는 꼭 마셔줘야 하고, 식사를 준비할 때에는 야채를 충분히 넣어서 균형 잡힌 식사가 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봄 라트비아에서 나의 데일리 루틴은 이렇다.


역시 알람 없이 푹 자고 일어난다. 꿈틀꿈틀 침대에서 나와서 요구르트에 뮤즐리를 섞어 먹고 넷플릭스로 프렌즈나 How I met your mother 같은 고전을 챙겨봤다. 쇼가 짧기 때문에 에피소드 두 개 정도를 보며 조금 노닥노닥거리다가 스트레칭, 스쿼트, 플랭크를 하며 산책 겸 조깅을 나가기 전 워밍업을 한다.


밖으로 나와서는 바로 조깅을 시작하기보다는 천천히 걸으며 올드타운을 가로질러 다우가 바 강변으로 갔다. 보통은 팟캐스트로 CNN이나 BBC 뉴스를 들으며 강변을 달렸다. 실은 처음엔 오래 뛰면 한 번에 30초 정도 뛸 수 있었는데 연습하다 보니 4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많이 늘었다. 조깅을 하고 나서는 내가 온 길 맞은편 올드타운과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꼭 조각내서 말린 빵을 챙겨 와서 공원에 있는 오리들에게 밥을 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였는데, 빵을 들고 나타나면 나를 쫓아 우르르 몰려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쳐다보는 눈빛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기분이라 되도록 자주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돌아오면 지친 나를 위해 바나나 같은 과일로 간식을 챙겨 먹고, 씻고(중요), 공부를 시작했다. 주로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하고, 틈틈이 논문 주제를 정하기 위해 관심이 가는 분야의 논문이나 국제기구 문서를 찾아 읽었다. 점심을 먹을 땐 다시 프렌즈나 HIMYM를 보면서 휴식도 취하고 영어 리스닝 연습도 한다.


자려고 누워서는 또 영어뉴스를 들었다.

처음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던 3년 전쯤 뉴스 듣기를 시도했을 땐 못 알아듣는 게 더 많았는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을 알아듣는다. 가끔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뉴스를 포털 메인에서 만나면 얼른 읽어보며 내가 잘 이해한 게 맞나 확인해보기도 했다.



실은 내가 이 데일리 루틴을 유지했던 지난봄은, 그러니까 2020년 봄은 유럽에 코로나가 너무 심하게 퍼져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통행금지령이 내리고 유럽 각지에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던 시기였다. 라트비아는, 적어도 리가 내부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감정도 좋고, 현지에 환자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일은 없었지만 나 역시 매일 들려오는 뉴스에 많이 위축되어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때나, 산책이나 조깅을 할 때를 제외하면 되도록 집에서 머물며 영어와 전공 공부에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지구력도 많이 늘었다. 오전에 매번 올드타운을 왔다 갔다 한 덕분에 재 독립기념일 행사를 나온 라트비아 대통령을 코앞에서 실제로 본 건 덤이다.


이 글을 쓰는 짧은 순간에도 라트비아 이곳저곳이 좋은 추억들과 함께 떠오른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지금 이곳 생활에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라트비아가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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