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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03. 2020

코로나 없는 2020년 여름, 라트비아와 나

라트비아가 휴양지였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지난 여름은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들썩이고 있었지만, 라트비아는 초기 조치에 성공하면서 환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가끔 발생하는 환자들도 대부분 해외 입국자들이었고 지역감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라트비아는 모든 락다운을 철회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정도만 유지하는 선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자주 어울리던 친구들은 이미 각자의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였고, 나도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왕복 30시간에 육박하는 비행시간과 자가격리 2주를 생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고, 나는 오스트리아에서 다음 학기를 시작할 때까지 라트비아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하는 라트비아와는 달리 오스트리아의 학기는 10월부터 시작해서 나는 6월 초부터 9월 말까지 4개월에 가까운 여름방학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대신 오스트리아 학기는 1월 말에 끝이 나고, 라트비아의 봄 학기가 2월에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에 내게 다음 방학은 없다.)


라트비아의 날씨는 참 극단적이다. 아침 9시 30분에 해가 떠 오후 3시 30분이면 해가 지고 하루 종일 비가 오거나 흐린 회색빛의 가을, 겨울과는 달리 라트비아의 여름은 오전 4시 30분이면 해가 떠서 10시 20분쯤 해가 지고 거의 온종일 밝다. 한 여름 최고 온도는 주로 26도 안팎이고, 가끔 30도를 웃돌 때가 있지만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그늘에 있으면 그렇게 덥지 않다. 해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천국 같은 나날이었다.


높은 습도와 더위로 인해 입맛을 잃고 밤잠을 설쳐 살이 쭉쭉 빠지는 여느 여름과 달리 이번 여름은 쾌적한 날씨, 게으른 일상으로 나는 처음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지난여름의 일상은 이렇다.


6월 중순쯤 아직 덜 덥다며 해변에 위치한 바 테라스에 앉아 세 시간 정도 친구와 맥주를 마시다가 어깨와 다리에 화상을 입은 일(유럽의 해를 만만히 봤다가 큰코다쳤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기차를 타고 해변으로 가 별 거 없이 비치 타월 위에 누워있고, 가끔은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한 일(발트해의 물은 여름에도 제법 차가웠다.),


친구에게 초대받아 해변에 위치한 여름 별장에서 하지 축제를 즐기고 일몰을 본 일(일몰 후 보라색과 진청색이 섞인 오묘한 빛의 하늘을 보며 해변을 걷는 게 너무나 좋았다.),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여름을 맞이해 라트비아를 방문한 친구들을 함께 만나 함께 논 일(골프 클럽에서 브런치도 먹고 오랜만에 골프 연습도 했었다.), 친구가 보살피고 있는 말을 보러 가서 털도 빗어주고 등에도 타 본 일(똑똑한 말이 내가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벤엔 제리스 아이스크림을 맛 별로 구입해서 야금야금 먹으며 친구와 나란히 앉아 넷플릭스를 본 일(온갖 맛을 먹어본 후 내 최애를 선정했다.), 친구와 리가 센터 곳곳을 걸으며 힘들 때쯤 코스타 커피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일(이건 한국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었다.), 리가 센터 맛집 탐방과 각종 힙스터들의 명소 방문(이건 순전 친구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같이 해준 거였다.),


반려 식물인 아보카도를 키우며 분갈이에 가지치기까지 해주며 애지중지 키웠던 일까지.(친구 집에 맡겨두고 왔더니 지금은 잎이 몽땅 말라버렸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당장 기억에 떠오르는 것만 쭉 써도 이렇게 많다. 처음엔 여유로운 여름방학이 될 줄 알았는데 지내고 보니 정말 가득 채워서 바쁘게 보냈었다. 게다가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각종 논문들을 훑어보고 교환학생 서류 준비와 거주 허가증 갱신, 아직도 미비한 영어실력을 보충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도 했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좋은 기억만 남은 라트비아를 내가 떠날 수 있을까. 오스트리아에서 라트비아로 돌아가 다섯 달 후면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복직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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