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 Dec 30. 2020

유럽에서 살며 '먹방'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의 성공을 조금은 이해해 본다.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았다. 워낙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그랬다. 유튜브가 영상의 선정성 등을 이유로 각종 구설수에 오를 때면 그들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커졌다. 덕분에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인 작년까지 수업 관련 자료를 찾을 때가 아니고서는 유튜브에 자의로 접속하는 일이 드물었다. 마치 결벽증처럼 유튜브를 피했던 기저에는 나 특유의 고지식함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토요일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다 같이 무한도전을 챙겨보는 세대라, 각자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게 되는 유튜브는 내 정서와는 영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해외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비례하여 커졌다. 웃기게도 내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메우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먹방 유튜버들의 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방송을 끝까지 보는 것도 아니다. 유튜버들이 본인만의 특색 있는 인사와 함께 음식을 소개하고, 물이나 음료를 콸콸 따른 뒤 준비된 모든 종류의 음식을 맛보고 표현하는 것까지 보고 나면 나의 손은 자동적으로 뒤로 가기 버튼을 클릭했다. 그들이 방대한 양의 음식을 모두 먹는 것을 보는 건 여전히 내게는 벅찼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국의 음식들, 한국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전까지 유튜브를 전혀 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내가 골라 볼 수 있는 영상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서 한식, 특히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영상을 챙겨보았다. 유튜버들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또 어떤 기발한 조합을 만들어냈는지 보고 은근슬쩍 나도 한국의 트렌드를 아는 척해 본다. 먹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라 유럽 이곳저곳을 다니며 유명하다는 음식은 다 먹어봤지만, 역시 한국 음식만 한 게 없다. 이미 그리운 마음에 자부심까지 더해지니 한국이 더 사무치게 그립다.


먹방이 논쟁의 여지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한 사람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이 가학적이라는 평도 있고, 먹방이 불필요하게 많은 음식 소비를 부추겨 식자재 낭비를 일으킨다는 비판, 배달 음식으로 인한 일회용품 쓰레기에 대한 문제도 있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먹방을 챙겨보는 이유는 어쩌면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허기를 채우기 위함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외롭고 쓸쓸할 때면 허기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을 하게 되는 증상처럼 만성적인 허전함에 허덕이다가, 그들이 한입 한입 먹는 과정을 보며 마음 한 편의 허함을 채우는 것이다.


이제 나는 밥을 챙겨 먹을 때면 먹방 유튜버의 방송을 틀어놓고 먹는다. 먹방 유튜버 특유의 물이나 음료를 콸콸 따르는 것도 흉내내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럽게 세팅된 오늘의 음식 소개가 끝나고 나면 시선을 내 음식들로 옮긴다. 그들의 것과 너무나 다르고,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는 나의 식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들과 함께 한 숟갈 뜬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맛보다 매번 50프로쯤 부족한 맛을 내는 내 음식을 씹다가 유튜버들의 표현에 공감해본다. 음식을 한 입 먹고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 기억을 더듬어 깊은 곳 어딘가 저장되어 있는 그 맛을 떠올려본다.


그 음식의 맛과 함께 동반되는 추억들에 내 마음이 일렁거린다.




크리에이터가 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이나 끝없이 업로드되는 유튜브 영상을 챙겨보는 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겠지만, 왜 사람들이 유튜브에 열광하는 지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몇 개의 방송사에서 만들어내는 프로그램들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이라고, 혹은 전문적이지 않은 이들이 만든 것이라고 배척했던 나의 부끄러운 지난날은 뒤로한 채 나는 오늘도 먹방을 챙겨보며 내 마음을 다독여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으로 '칭챙총'소리를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