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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24. 2020

처음으로 '칭챙총'소리를 들었다.

유럽의 인종차별과 교육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다른 도시로 넘어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잠깐 멈춘 곳.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내린 곳에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열명쯤 모여 있었고, 온통 오스트리아 사람들뿐인 곳에 동양인 셋이 내리자 모든 시선은 우리에게 쏠렸다. 쏠리다 못해 자기들끼리 대놓고 쑥덕거리고, 뭘 한번 건드려볼까 하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다소 신경 쓰였지만 나는 금세 오스트리아의 웅장한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일행보다 한참을 앞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조금 걷는데, 뒤에서 '칭챙총, 칭챙총' 하며 깔깔 웃으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모여있는 아이들 중 가장 까불거리던 남학생 둘이 칭챙총을 외치며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미 1년 반 가까이를 유럽에서 살았지만, '칭챙총'을 실제로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자동적으로 몸이 홱 돌아갔다. 주변에 서 있던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은 아이들의 도발에도 별 관심 없어하는 표정으로 보고만 있었고, 그런 상황에 더 힘을 얻은 듯 아이들은 더 낄낄거렸다. 열명쯤 되는 아이들 중 여학생 한 명만 심각한 표정으로 그 아이들을 말리는 것 같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무슨 반응을 보일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달리 유럽에서 지내며 인종차별 행위를 지겹도록 겪었다던 나의 일행들은 영어로 아이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별 말 못 할 줄 았았는지 아이들은 조금 당황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일행들 옆에서도 멈추지 않고 나는 점점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럴 때면 내 전공이 참 도움이 된다.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느낌이 오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내가 자신들에게 다가가자 낄낄 웃던 아이들이 얼어붙었다. 다섯 발자국쯤 남겨놓고 멈춰 서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야, 알고 있지? 내 생각엔 너희가 사과해야 할 것 같은데."


눈을 굴리던 아이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Sorry'를 말했다. 


"너희 그런 말 다시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아이들은 다시 한번 사과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yes'를 말했고 우리 일행은 다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일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아이들은 그 뒤에도 몇 번을 우리 눈치를 보며 독일어로 자기들끼리 욕설을 내뱉고 낄낄거렸다. 그러더니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자 창가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처음 '칭챙총'을 겪어본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우리에게 칭챙총을 외친 건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두고두고 신경이 쓰였다. 


'칭챙총'과 같은 유색 인종에 대한 인종 차별 언어는 참 많다. 웃기게도 어느 나라를 가나 모든 사람이 '칭챙총'을 알고 있으니, 심지어 만국 공용어라는 영어보다 더 잘 통할 지경이다. 아시아에 대해 뭘 얼마나 알까 싶은 아이들도 그런 인종차별 단어는 어디서 배웠는지 귀신같이 읊어댄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그런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나와 달리 초등학생 시절부터 그런 단어들을 사용하는 걸 보면 그 아이들에게는 그 단어가 꽤 익숙한 게 분명했다. 벌써 인종차별을 체득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렇게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하곤 했다. 나에게 다정한 유럽권 국가 출신 친구들을 떠올려 본다. 이들은 처음부터 차별 없는 마음가짐을 가진 걸까, 아니면 교육을 통해 차별이 잘못된 것임을 학습한 것일까.


내가 아는 한 유럽의 중요한 교육 정책 중 하나는 차별 금지 교육이다. 인종 차별뿐만 아니라 소수자 차별 금지, 남녀 차별 금지 등 모든 차별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땐 선진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왜 EU에서 두 팔 걷고 차별 금지 교육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미 사회에는 온갖 차별이 만연해 있고, 어떻게든 이걸 해결하기 위해 교육이라는 방법을 강구한 게 분명했다.


내가 처음 겪은 명백한 인종차별에 어이없어했던 건, 그런 행동을 한 대상이 초등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그 또래 아이들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아마 큰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닐 거라는 판단이 있어서였다. 그 아이들은 자랄 거고, 끊임없이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잘못된 사회의식이 이기느냐, 바른 생각을 심어주는 교육이 이길 것이냐에 따라 아이들의 생각도, 의식도 많이 변할 게 분명하다.


내 나라 내 아이들이 아니니 깊이 참견할 수는 없지만, 교육이 아이들을 바른 곳으로 이끌기를 바랐다.


그리고 생각은 우리나라로 옮겨붙는다. 우리나라도 분명 시골 한가운데 외국인이 나타난다면 다들 휘둥그레진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더 나아가 빤히 쳐다보기도 할 것이다. 그 아이들처럼 대놓고 쑥덕거릴 것이고, 인종에 따라서 어떤 인종차별 용어를 사용할지도 대충 상상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차별 금지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나. 또 한 번 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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