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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 Dec 22. 2020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다

다시는 엄마에게 아무거나 해달라고 하지 않겠다.

"이젠 진짜 요리가 지긋지긋해"


고작 1년간의 유럽 자취생활 중 온전히 나 스스로 요리를 하며 지낸 지 3달이 채 안되어 내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제발, 이제 요리는 그만 하고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다고. 그간 자취 생활은 제법 해 왔지만 설거지가 하기 싫다는 이유로 덩달아 요리까지 피해왔던 나다. 당연히 음식은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점심은 급식, 저녁은 간단히 사 먹는 식으로 주먹구구식 해결을 해 왔다. 그러나 해외에서 자취를 하게 되고, 코로나와 락다운까지 겹치며 지난 3개월간 나는 내 식사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결국 그 짧은 기간 동안 나의 식성은 현실에 발맞추어 참 많이 바뀌었다.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한국에서 1년간 먹을 라면의 곱절을 지난 3개월간 먹어 치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중 가장 맛있고 익숙한 맛이 나는 것이 라면이었으니까. 마트에서 파는 많은 식재료들 중 내게 익숙한 것은 몇 안되었기 때문에 늘 같은 것을 사다 보니 매번 만드는 요리는 3-4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그나마도 마늘, 양파, 대파, 버섯, 애호박을 볶거나, 된장과 끓이거나, 고추장과 끓이거나 하는 식으로 조리법만 살짝 바꾸어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애매한 한식들이었다. 덩달아 까다롭고 수준 높던 내 입맛은 내 요리 수준에 맞추어 하향 평준화되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다.




나는 엄마의 퇴근길 마중을 좋아했다. 엄마가 일하는 곳 근처를 알짱거리다가 엄마의 근무가 끝나면 집까지 나란히 함께 걸어갔다. 이십 분 정도 되는 길에 엄마가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면 매번 한결같이 '아무거나'라고 했다. 그땐 엄마 편하라고 아무거나 좋다고 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 말에 얼마나 골머리를 썩었을까, 싶었다. 나는 고작 3개월간, 고작 3-4가지의 요리 중에서도 오늘은 뭘 해 먹어야 하나 생각하는 게 너무 피곤하고 지겨웠는데, 엄마는 30년을 날마다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 가족의 입맛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리고 한 100가지쯤은 거뜬히 넘을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가족들의 입에서 '아무거나'가 나왔을 때 우리 엄마는 조금 고민하는 듯하다가 금세 이것저것 사더니 뚝딱뚝딱 30분 만에 우리 입맛에 꼭 맞는 요리와 따끈따끈한 밥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도 엄마가 하는 것처럼 뚝딱뚝딱 흉내를 내면 맛있는 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줄 알았다. 어림없는 일이었다.


혼자 살다 보면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가족들의 희생을 발견하게 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뭐라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딱 좋아하는, 그러면서도 어제와 겹치지 않는 식사를 준비해주는 엄마, 장을 본 후 마트에서 가져온 박스를 소중히 모셔다가 그 안에 가지런히 분리수거를 해 주말이면 깨끗이 처리하던 아빠의 감사함 같은 것들. 집은 청소하지 않아도 내가 어지럽히지 않으면 항상 깨끗할 줄 알았고, 화장실은 항상 물이 닿으니 청소가 필요 없는 줄 알았던 지난날 나의 무지함과 내가 보지 못한 사이 모든 것을 처리해준 부모님의 시간들.


내가 누려온 것들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남이 해준 밥이 먹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해도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이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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