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고양이 자랑입니다
유럽 대부분의 가구가 그렇겠지만, 라트비아도 대부분 집에서 반려 동물을 기른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의 색다른 점은 강아지를 키우는 집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만난 모든 라트비아 사람들 중 집에 고양이가 없는 경우는 딱 한 집뿐이었다. 이 '모든 라트비아 사람'들에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포함된다. 심지어 교수님들까지도.
왜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더 많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마 주거 형태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의 주거 형태는 대부분 우리나라처럼 아파트이다. 마당이나 강아지가 편히 뛰어다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게 힘들어서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키우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유럽답게 대부분의 건물이 상당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아마 쥐가 나타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건 아닐까도 개인적으로 생각해봤다.
집에서 고양이를 많이 키울 뿐만 아니라,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에 대한 대접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올드타운과 시티센터 사이의 공원에는 고양이를 위한 집도 조용한 풀숲 한가운데 놓여있고, 올드타운 곳곳에는 '고양이 호텔'로 불리는 작은 집들이 놓여있다. 고양이들을 위한 밥과 물도 준비되어있다. 꼭 올드타운 주변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겨울이면 이들을 위한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실은 분명 올드타운에 있는 고양이 호텔과 공원에 있는 고양이 집 사진 찍어둔 게 있었는데... 아마 핸드폰 용량 문제로 삭제해버린 것 같다. 내 블로그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걸로 봐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포스팅도 해놓지 않은 것 같다... 라트비아 가면 꼭 다시 찍어서 첨부해놓아야겠다.
라트비아에 돌아와 공원 산책을 하는 도중 공원에서 고양이 집을 다시 만났다. 추운 계절을 잘 견디라고 입구에 두꺼운 비닐로 문도 만들어져있고 안쪽으로 방한재도 달려있는 것 같았다. 밖에는 고양이들을 위한 밥도 준비되어있었다. 안쪽에 고양이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싶었지만 혹시나 휴식을 취하고 있을 아이들을 방해하고싶지 않아서 밖에서 살짝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 한 켠에는 사람들 모두가 우범지대라고 인정하는 '마스카바스'라는 지역이 있다. 그리고 위 사진은 마스카바스에서 찍은 늦가을의 길고양이들. 사람들에겐 위험한 곳인 마스카바스조차 고양이들에게는 살아갈만한 지역이다. 이곳 근처에는 언제나 누군가 채워놓은 고양이 밥과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이면 할머니들이 나와서 새들에게도 밥을 주신다.
기숙사가 마스카바스에 위치한 탓에 의도치 않게 그 곳에서 한 학기를 산 후 알게 된 것인데, 마스카바스에 있는 무서운 분들... 도 동물과 여성은 건드리지 않는다. 물론 건드리든 건드리지 않든 위험할 수 있으니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지만, 어쨌거나 다들 이곳에 대해 설명할 때 '위험한 곳이지만 여자는 보통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도 어두워지면 돌아다니지 말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이걸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어쨌거나 그 위험하다는 마스카바스도 길에서 사는 동물들에게만큼은 따뜻하다.
물론 리가의 아파트에서도 강아지를 키우는 집들도 있다. 다만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와 비교했을 때, 길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중소형견의 비율은 높은 편이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강아지와 함께 다니는 사람들을 훨씬 많이 볼 수 있고, 마루페와 같은 근처 주택 단지에 가면 대형견을 많이 볼 수 있다. 라트비아도 여느 유럽 국가들처럼 식당이나 마트, 카페 등에 반려 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다.
코로나 락다운으로 인해 생필품을 판매하는 가게들만 문을 열 수 있을 때에도 반려 동물 용품점 역시 문을 열 수 있는 가게들 목록에 포함되어있었다. 아마 반려 동물이 라트비아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실은 유럽 국가들이 락다운을 할 때 대부분 반려 동물 용품점은 문을 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라트비아에 대한 애정이 강하니까 더 강조해보았다.)
가끔 길을 가다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근처 아파트 창가에서 고양이가 날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는 것 같아서 웃어주면 관심 없다는 듯 쌩 하고 가버린다. 고양이들의 도도함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독립해서 살게 된 이후로 나는 반려 동물을 들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내게는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질 여력이 없어서, 스스로 '진짜 동물을 사랑한다면 나같은 사람은 반려 동물을 키우면 안돼'라고 되뇌곤 했다. 그들에게는 주인이 세상의 전부일 텐데, 반려 동물을 들인다면 언제나 나를 기다리게만 할 것 같아서.
라트비아의 많은 친구들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덕분에 나도 덩달아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신이 나서 놀다가도 고양이 밥을 줘야 해서, 혹은 내일은 고양이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 날이라 일찍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아직 멀었어. 아마 50대는 되어야 고양이를 키울 만큼 성숙해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