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트비아로 유학을 떠났다.
"아니, 거기가 어디라고 가겠다는 거야!"
내가 처음 라트비아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교장선생님께서는 펄쩍 뛰며 말리셨다. 못 가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순전 걱정이 되어서. 교장선생님이 맡은 학교의 교사가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로 유학을 떠나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걱정이 되셨을 것이다. '라트비아'를 검색해보시고는 더 펄쩍 뛰셨다. '구 소련 국가'라는 단어가 주는 알 수 없는 특유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온통 회색빛에, 상자 같은 건물들, 춥고 우울해 보이는 사람들 같은, 영화 속에서 표현되던 구 소련의 느낌.
물론 이후 내 의지가 분명함을 말씀드리고 라트비아가 전혀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도 재차 말씀드리자 기왕 마음먹은 거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셨지만, 교장선생님의 첫 반응은 딱 예상한 대로였어서 생각할 때마다 자꾸 웃음이 난다.
내가 라트비아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라트비아가 어디야?’이다. 내가 말을 꺼냈을 때 이미 라트비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경우는 정말 굉장히 드물다. 나 역시 대학원을 찾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검색해보기 전 까지는 라트비아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실은 평창 올림픽에서 스켈레톤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라트비아는 유럽 북동쪽에 있는 작은 나라다. 위로는 에스토니아, 아래로는 리투아니아가 있는데, 이렇게 설명을 하면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라트비아가 어디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라트비아의 오른쪽에는 러시아가 있고, 에스토니아 위로는 핀란드, 리투아니아 아래 폴란드가 있으니 쉽게 생각하면 위로는 북유럽 아래로는 동유럽 오른쪽으로는 러시아를 두고 그 사이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세로로 나란히 위치되어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과거 소련에 편입되었었지만 1990년에 독립하였고, 현재는 EU에 가입해서 사용하는 화폐도 유로화이다. 수도는 리가, 언어는 라트비아어를 쓰지만, 여전히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곳곳에서 러시아어를 볼 수도 있다. 심지어 영화관 자막도 라트비아어, 러시아어를 둘 다 송출해준다.(가끔은 영어 자막도 함께 있는 영화들도 있다.) 수도인 리가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면 대부분 말이 통하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트비아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백만 송이 장미'인데, 이 노래의 작곡가가 라트비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라트비아의 경제 규모가 크지 않고 동유럽 국가들의 상황이 비슷한 만큼 물가가 매우 저렴하고 요즘은 정말 Kpop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아시아, 특히 한국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실제 코로나로 인해 유럽 곳곳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이 발생하던 지난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라트비아에 있었지만, 인종차별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물론 내가 못 알아챈 것일 수도 있다.)
여름에 해가 가장 긴 날에는 일출이 4시 30분, 일몰이 11시 20분 일만큼 해가 길지만, 또 겨울에는 일출이 9시 30분, 일몰이 4시 30분일 정도로 일조시간이 극단적인 북유럽스러운 날씨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라트비아를 여행을 하기 좋은 시기는 6, 7, 8월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조 시간이 길고 최고 기온이 26-30도 사이 정도로 높지만 또 습하지는 않아서 그늘에 있으면 별로 덥지 않기 때문이다. 6월에는 23,24일에는 하지 축제인 야니가 있는데, 일 년 중 일조시간이 가장 긴 날 밤새 가족,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함께 일몰을 보고, 또 일출을 보는 나라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이다.
3시간이면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올드타운이 있고, 주변 근교에 쿨디가나 콜카, 슬리테레 국립공원같이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도시들도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시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여름에 라트비아에서 한 달 살기 같은 시간을 가져도 참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올드 타운과 시티 센터 사이로 예쁜 공원이 뻗어 있어 산책하거나 테라스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기 좋고, 라트비아의 한강인 다우가바 강 옆에서 조깅을 하기도 참 좋다. 리가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40분이면 해변이 있는 유르말라에 가서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다.
라트비아라는 나라는 참 예쁘고 매력이 있는 나라인데 알려지지 않아서 참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도시도 예쁘고 시민 의식도 높고 새벽 한두 시에 시내를 걸어 다녀도 안전한 데다가, 지난봄에는 코로나 초기 대응을 잘해서 여름 내내 지역감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해외 입국자 위주로 하루에 0-3명 정도의 환자만 발생했다. 아마 마스크를 전혀 쓸 필요가 없었던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안전한 국가가 아니었나 싶다.(물론 지금은 환자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내가 라트비아로 유학을 온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원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대학원 진학을 준비할 당시 나는 '다문화 교육'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다문화 학생의 숫자가 늘어감을 체감하며,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다문화 교육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한 후 돌아와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돕고 싶었다. 당시 라트비아 대학교 석사 프로그램에 다문화 교육 관련 수업이 함께 있어서 라트비아 대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수업은 전부 영어로 진행된다.
학교생활을 하고 더 많은 교육 정책들을 접하며 나의 관심사는 조금 다른 쪽으로 이동했지만, 나는 여전히 라트비아로 유학 온 것을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미 1년을 라트비아에서 지낸 지금,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기억을 들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트비아라는 나라의 진 면모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많은 분들이 라트비아의 매력을 알고 관심을 가줬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