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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헨님 May 18. 2024

회사에서 만든 유튜브 채널로 실버 버튼을 받았습니다.

2년 간의 고군분투를 되돌아보며

"브랜드 유튜브 채널 이렇게 키우기 쉽지 않은데!"


 마케터분들이 이렇게 말해 주시면, 마음이 울컥해요. 온전히 이해받은 듯한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털어놓고 싶어집니다. 처음에는 막막했고,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고, 설득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 알고리즘이 조금씩 채널을 밀어준다는 느낌이 들었고, 오가닉한 유입과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하며 구독자 증가 그래프가 점점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유튜브에서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인 10만 구독자 달성, 실버 버튼을 받게 되었습니다.


실물이 훨씬 영롱하고 묵직한 실버 버튼!


안온하게 일하던 PD가 브랜드 회사로 옮기면 벌어지는 일


2년 전, 콘텐츠 제작 회사에서 브랜드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커머스 PD로 TV와 모바일 채널에 발행되는 다양한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내 브랜드’의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팬덤이 생기고, 성장하는 그 역사들을 오래 함께하고 싶어졌거든요. 그러나 이직 후 몇 달 동안은 이 선택이 옳았는지 계속 고민해야 했습니다.


 2012년에 PD가 되었을 때부터 이 업의 신비로움에 대해 늘 생각했습니다. 디렉션을 주고, 전문 기술자들의 능력을 빌려 콘텐츠를 만드는 이 직업이 너무나 재미있고 이상했습니다. 제가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거든요. 당시에 촬영 장비들은 무척 비싸고, 크고 무거워 직접 만지지도 못할 정도였고, 제가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곤 편집실에서 클립을 자르는 가편 정도였고요. 후반 작업실과 녹음실을 거치면서 각 과정마다 감독님들과 함께 작업을 했죠. 그래서 늘 내 직업의 정체를 의심했어요. 그때는 기획자의 역할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로듀서의 역할을 보통 ’배의 선장’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나아가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각 이정표마다 적당한 속도로 가 닿으면서 시작점부터 끝까지 계속 선원들을 독려하고 이끄는 점이 닮아 있죠. 이 직업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어깨너머로, 또 도제식으로 사수에게 착실히 배울 수 있지만 진정한 업의 의미를 해석해 내재화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브랜드 회사에 오니 팔다리가 잘린 채로 세상에 나온 느낌이었어요. 탄탄한 제작 시스템, 기술자들, 장비와 편집실도 없고 PD 한 명 뽑아놓고 채널을 키워보라니! 너무 당황스러웠죠. 제작 프로세스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PD의 역할을 종종 오해하기도 합니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촬영하고, 편집을 거쳐 종편 작업도 하고, 3D 그래픽도 만들고 1인 다역을 멀티로 직접 다 해낸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모든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고 제작 장비도 직접 모든 종류를 척척 다 세팅할 줄 안다고요. 하지만 PD 업무의 본질은 기획, 디렉팅, 그리고 마스터링 작업입니다. 모든 과정에 의도를 갖고 관여하기는 하지만, 보통을 각각의 기술자들과 협업하면서 각 과정마다 정확한 의도의 콘티나 스토리보드가 있고, 세세한 수정을 하거나 컨펌하며 콘텐츠를 완성해 나갑니다.


브랜드 온드 미디어 채널 운영의 세 가지 골


 이직이 실수일지도 모른다며 자책하는 대신 정신을 차리고, 일단 목표를 세웠습니다. 회사에서는 ‘구독자 10만’을 목표로 받기는 했지만, 숫자보다는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골 세팅이 중요했습니다. 세 가지를 구축하기로 했어요. ‘제작 프로세스’, ‘콘텐츠 시리즈’, 그리고 ’찐 팬덤‘. 이것이 탄탄한 토대로 완성되면, 앞으로 계속 부지런히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첫 번째, 기존에 없던 인하우스 제작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서 콘텐츠 제작의 전 과정을 쫙 펴서 나열해 보았습니다. 크게 Pre-Production(기획), Production(촬영), Post-productio(후반)으로 3등분되어 있던 과정 안에 있는 업무들을 하나하나 쪼개 두고 ’내가 직접 할 것‘과 ’위임할 것‘을 나누었죠. 촬영, 조명 장비를 다루는 것은 전문가를 구하고, 가편과 종편 작업은 위임하되 촘촘한 디렉션을 주기, 그리고 각 단계의 마스터링에 힘쓰기로 합니다. 유튜브 영상 하나를 업로드하려면 제작 외에도 섬네일 시안과 제목을 정하는 일도 너무 중요하고, 영상이 잘 퍼지도록 마케팅 단을 신경 쓰는 일도 필요했죠. 모두 단계별로 직접 해 보면서 감각을 익혀 갔습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지만, 새로워서 설레고 재미있었어요.


 두 번째로, 다양한 소재를 접목하며 꾸준히 발신할 수 있는 ‘시리즈’를 만드는 일이 중요했어요. 헤라가 말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들을 헤아리고, 하나씩 매칭하면서 기획안을 만들었죠. 수석 아티스트의 제멋대로 메이크오버 ‘수석살롱’, 헤라 아티스트 근접 관찰기록 vlog ‘굳모닝신용산’, 궁금증을 해결하는 리얼리티 예능 ‘팩트탐구’, 특별한 사람들의 뷰티 라이프&휴먼 다큐멘터리 ’헤라추천‘, ’색조 기술 연구원들의 개발 비하인드 토크쇼 ‘색조탐구’까지 총 5개 시리즈를 론칭해 매월 찍고 발행하고 있습니다.


직접 기획하고 매달 제작하는 5개 시리즈들

 시리즈를 만드는 것은, 자리를 잡기까지 기획을 가다듬고 톤 앤 매너를 정립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번 잘 자리를 잡으면 팬덤을 키워가기에 유리합니다. 이런 영상이 계속 나올 것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구독 버튼을 누르기 시작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시즌별로 메인으로 밀어야 할 신상품이 나오면 시리즈마다 다양한 제작 의도로 다양하게 제품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서 유명한 쿠션의 리뉴얼 버전이 론칭했을 때, <색조탐구>에서는 담당 연구원이 등장해 기술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vlog를 통해 팝업 공간을 유머러스하게 공개하기도 하고, 메이크오버를 통해 룩을 발신할 수도 있죠. 다양한 측면에서 상품을 스토리텔링할 수 있으니,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상품의 특장점을 학습하게 되죠.


 세 번째는, 채널의 메인 출연자들을 발굴하고 일관되게 캐릭터를 노출해서 팬덤을 쌓아가는 것이었는데요. 유튜브의 결에 맞는 유머러스하고 자연스러운 출연자 세 명을 섭외해서, 그들의 매력을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실제로, 길에서 구독자들이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는 경험담이 여러 번 들려와요. 촬영 중에 ‘어! 저 유튜브에서 봤어요!’라면서 다가오는 분들도 있었고요. 회사에서는 이미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다는 직원들을 자주 마주칩니다.


 우리 채널의 메인 출연자 세 명이 더욱 인기를 얻고, 친밀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예요. 처음에 채널을 맡았을 때는, 우리 구독자가 과연 무엇의 팬이 되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채널의 기존 구독자들은 브랜드의 앰버서더인 블랙핑크 제니의 팬, ‘국민 쿠션’으로 불리는 블랙쿠션 또는 베스트셀러인 센슈얼 립 라인의 팬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그보다 더 실체가 있는 인물들을 내세워 꾸준히 소통하는 게 유튜브 세상에서는 더 맞다고 생각했어요.


2024.4.17.16:32. 주식중독자처럼 늘 확인하는 유튜브 스튜디오



 딱 2년 후에, 세 가지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룬 동시에 10만 구독자를 달성하고, 실버 버튼이 도착했습니다. 구글이 보내 준 택배를 실물로 받아 보니 더욱 영롱하고 묵직했어요. 말로 다 할 수 없이 치열했던 날들이 많았는데요.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서 쏟아지는 눈물을 쏙쏙 감추면서 외롭게 퇴근하기도 하고, 다음으로 옮길 회사를 알아보고, 친한 동료들을 붙잡고 막막함을 호소하기도 했고요. ‘브랜드 유튜브 채널 학습조직’을 만들어서,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브랜드 담당자들과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푸념하고 응원하기도 했었죠.


 제가 ‘기획자’로서 아주 가파르게 성장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저에게는 ‘아주 어려운 미션’이 도파민이라, 자꾸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은 퀄리티로 제작하는 목표를 스스로 추구하면서 매일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기존에 없던 낯선 기획을 실현하느라 우려와 비난의 말들을 듣고 상처를 받은 날도 많았는데요. 기운이 나는 피드백들이 들려오고, 이제야 앞으로 나아갈 수레바퀴가 단단해진 것 같아서 조금 더 힘껏 일하고 싶어졌어요. 10만 달성이 중요한 지표이기는 했지만, 지표만 추구하고 나아가고 싶지는 않고요. 브랜드의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가까이에서 전하며 긴밀하게 소통하는 채널로 계속 쑥쑥 키워보려고 합니다. 애정이 담긴 댓글을 읽는 일이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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