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인

그때, 그때의 그때

by 아무튼 간호사

“본인의 장점을 <체계적인 업무 진행>으로 말씀해주셨는데 저희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준비하기까지 어떠한 체계적인 과정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역시 인터뷰에서는 허투루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노련한 인사 담당자에게 내 영혼 깊은 곳까지 취조당하지 않으려면 애초부터 거짓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그럴 수밖에 없다면 내가 한 거짓말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것 없는 인터뷰의 기본, 그건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냐며 면접관들은 나를 바라봤다.


“저는 대체로 자고 일어나면 꿈을 기억할 수 있는데요. 며칠 전 꿈에서 구직 공고를 보고 있었습니다. 공채나 특채가 없기로 유명한 A사의 채용 공고가 있기에 서류를 제출하고 인터뷰를 보러 갔지요. 영어 질문이 상당히 곤혹스러웠지만, 간신히 답을 했고 믿을 수 없었던 합격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꿈을 꾸고 난 다음 날 아침, A사만큼 까다로운 귀사의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하지만 재빠르게 7년 전에 쓴 자기소개서를 찾아내 수정했죠. 서류 합격 후 빠듯한 인터뷰 일정이기에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한 자기소개가 걱정되지만, 의식의 흐름에 맞춰 채용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그러한 꿈을 꾸었고 꿈에서 본 것을 기억하며 체계적으로 행동에 옮겼으니 난 진실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우연의 연속으로 면접을 보러 여기까지 와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수 없었다. 믿고 안 믿고는 차치하고 이런 판타지를 진지하게 말하는 내가 너무 이상해 보이니까. 그런 용기도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또 거짓을 말했다. 꿈에서 본 장면 대신, 장래 포부 그러니까 또 다른 의미의 꿈을 말했다. 체계적이지 않은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나를 계획성 있는 사람으로 끼워 맞추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내 인생의 모든 선택이 건설적인 계획과 거리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감은 지키자>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마감의 신은 마감과 함께 온다”는 말을 굳게 믿었고 언젠가 끝내 나를 찾아오지 않은 ‘마감 신’에 배신당한 채 야근을 꾸역꾸역했으니 말이다.


이 회사의 면접은 시작부터 잘못되긴 했다.


“가볍게, 자기소개 해볼까요?”

라는 이 첫 질문은 내게 영어로 물어봤어야 한다. 헤드헌터는 영어 인터뷰가 있지만, 자기소개나 지원동기 정도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난 그 말을 순진하게 믿었고 그 질문만 영어로 준비했다. 그러니 자기소개는 한글로 물어봐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어쩔 수 없이 면접관이 그리 못 견뎌 한다는 미괄식 화법의 말을 늘어놓았다. 벌써 몇 번이나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걸까? 를 떠올렸다. 모든 것이 그 <꿈>에서 비롯된 거다.

인터뷰 마지막엔 대망의 영어 질문이 나왔다. 당연히 자기소개나 지원동기가 아니다. 질문을 받고 10초 이상 침묵했다. 인내심 많은 면접관은 기다려줬고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을 꿰 맞추어 인터뷰를 끝냈다. 나의 부족함을 이렇게까지 드러내는 상황에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며칠 뒤, 인터뷰 결과가 “합격”이라는 사실에 난 두려웠다. Dreams come true라 하지만 이건 좀 무섭다.


평소 막연하게나마 다니고 싶었던 이 회사의 입사 과정이 해피 엔딩이라면 익명으로 사내 기고라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인터뷰같이 코믹하지도, 더 이상의 데자뷔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두려웠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나니 행복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긴 잠에서, 소란스러운 꿈에서 깨어나고 싶다.


-2020년 6월, 어느 날의 기록에서-



사진 출처 : 전람회 "꿈속에서" 구글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