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난 너무 예뻐

대학교 보건실 간호사

by 아무튼 간호사

매일 아침 샤이니 노래를 들으며 통근버스를 탔다. 현실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하루를 시작한다. 8개월 남짓 대학교 내 보건실 간호사로 일할 때다.


보건실은 학생회관 건물 3층, 그 안에는 계약직과 정규직, 두 명의 간호사가 일했다. 나는 물론 전자였고, 정규직 선생님은 정년을 얼마 남지 않은 그래서 학교 모든 일에 수동적인 그런 분이었다.


보건실의 하루는 각자의 테이블을 만지작 거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청소라고 부를 수 없는 이 행위가 그저 물티슈로 쓱쓱 닦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화분에 물 주기.

볕이 잘 드는 보건실에는 정규직 선생님이 십 년 넘게 키워온 화분이 많았다. 작은 화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랄까. 나는 대충 물만 주지만 그 선생님은 식물의 잎 사이사이를 수시로 닦아 냈다. 특히 월요일 오전, 그녀는 많은 시간을 화초 가꾸는 일로 보낸다.


9시가 되면 다치고 아픈 학생이, 교직원이, 청소하는 파견직 근로자가 보건실을 찾는다. 아주 가끔 교수님들이 오기도 했다. 대학교 보건실은 입사 전 내가 생각한 곳보다 상당히 바빴다. 아니 나만 바빴다. 정규직 선생님은 주로 화분을 돌보고, 교수님이 소화제나 두통약을 받으러 방문할 때 정성껏 모시는 정도였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다 퇴사 후 처음 일한 곳이기에 그간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계약직 직원의 서러움을 처음 느끼게 한 곳도 이곳이다.


아프다고 징징대는 학생, 예방접종을 맞는 사람, 어제 회식해서 몸이 안 좋다며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다 가는 교직원.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게다가 그때만 해도 인바디 측정을 무료로 해주는 곳이 많지 않았기에 보건실의 인바디는 제일 인기 종목이었다. 인바디를 측정하는 특정 요일에는 대학생, 대학원생, 직원들까지 꽤 오래 줄을 서서 기다렸다. 결과지를 한 명 한 명에게 설명해주라는 업무 지시에 내 목은 쉽게 쉬었다. 운동도 안하면서 왜 다들 인바디만 체크하는지 속으로 욕을 해댔다. 나는 정규직 선생님과 근로학생이 없으면 인바디 기계가 고장 나길 바라며 발로 툭툭 차며 지나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지만 당시엔 꽤 진지하게 그 일을 힘들어했다.


구충제를 받아가며 민망해하는 신입생 커플은 귀엽고 외국인 학생이 찾아와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재밌기도 어렵기도 했다. 매일와서 미안하다며 파스를 가져가는 청소하는 분들의 얼굴에는 늘 수심이 가득해 속상했다. 보건실 한편에 준비해놓은 녹차, 둥굴레차 같은 티백과 커피믹스를 주머니에 슬쩍 넣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민망함이 남겨졌다.


체대는 정문 앞, 보건실이 있는 학생회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단과대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나타나 어깨며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가는 체대생을 누구보다 환영했다. 유니폼은 사람을 멋있게 만드는 후광효과가 분명 있다. 아프다는 징징거림 따위 없는 쿨내 나는 그들의 방문을 대놓고 기뻐했다. 그랬기에 사심 가득 “누난 너무 예뻐” 라는 노래를 끼고 살았다. 결국 아무일도, 누구와의 작은 해프닝도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젊음을 열렬히 좋아했다(라고 하기엔 나 역시 충분히 젊다는 걸 그땐 몰랐다).


벌써 오래 전의 그날이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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