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일한 간호사였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 기억나는 병원에서의 시간, 그날의 분위기와 목소리가 있다.
여지없이 힘든 근무 후 퇴근하려 천천히 걸어가던 복도에서 친하게 지내던 중환자실 당직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내게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지쳐 보여요? 그래도 우리가 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라며 힘든 나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일단, 탈의실에 가 옷을 갈아입는다,
밖으로 나가 손을 뻗는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 강남역으로 간다, 클럽이든 뭐든 신나게 놀고 생기 충전하고 가세요”
본인 방식대로의 위로를 해줬다. 고마웠다. 나는 분명 환한 얼굴과 옅은 미소를 장착하며 “그러게요. 그럼 정말 좋겠어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리고 손을 뻗어 강남역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지하철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지만 그게 그리 쉽냐며, 그저 집에 가 쓰러져 쉬고 싶을 뿐이라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문득 깨닫게 된 건 어쩌면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매일 혼자 아파하며 하루를 힘들게 보내기보다 난 뭐든 즐거움을 찾아야 했다. 그때의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쉬운 방법이었는지 모른다고.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중환자실에 갇혀있는 간호사라는 핑계로 내 이십 대에는 희망이 많지 않았다. 내 안위 외에는 딱히 무얼 욕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습관처럼 시간을 보냈고 이십 대가 지났다.
이제 나는 그저 나이 많은 여자가 되어있지만.
“우리는 희망하는 것을 얻습니다”라는 반듯한 문장으로 위로를 보낸다. 어색하지만 이젠 그렇게 해봐도 될 것 같다. 그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것 외에 무엇을 소원해 본 적이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2021년, 올해는 이 문장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우리는 희망하는 것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