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by 아무튼 간호사

정신과에 가는 오늘 같은 날에는 진료 전, 지난 2주간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가급적 원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 가는 편이다.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지만 여전히 나에 관한 궁금증을 원장님에게 묻는다.


진료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ㅇㅇ씨, 요즘 어떻게 지냈어요?”

원장님의 물음에 어느 날은 “잘 못 지냈어요” 혹은 “그냥 그래요” 라든지 “뭐, 지난번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원장님은 그럼 어떤 점이 불편한지 또는 괜찮은지 되묻는다. 그때 난 자주 “잠”을 이야기한다.


2년 전의 첫 진료도, 재발이라고 들은 20년 5월도 늘 잠이 문제였다.

4일 이상 잠을 못 잔 적이 있다. 허브티, 반신욕, 따뜻한 우유, 지루한 책, 명상, 요가, ASMR까지..

알고 있는 방법을 다 써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낮에는 기절할 정도로 잠이 쏟아져 최선을 다해 눈을 뜨고 있었지만 밤에 눕기만 하면 잠이 달아났다. 결국 정신과에 갔고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번 진료를 받을 때면 잠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요즘은 다시 불면의 시작이다. 잠이 들기는 하지만 쉽게 깨어 뒤척인다. 우울감이 심해졌다기보다 Y를 잃은 상실감에 마음이 아프다.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을 <순간마다 네가 떠올라>라는 가사를 떠올리며 참아내고 있다.


잠을 잘 자면 눈 뜨자마자 울적한 기분이 거의 없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치료받는 지난 2년간 아무리 졸려도 늦은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언젠가는 중요한 일을 해야만 해서 늦은 오후에 커피 한 잔을 마셨는데 이제껏 그렇게 정신이 맑았던 오후가 없었다. 그 커피 한잔은 머릿속의 뿌연한 안개를 거둬주는 따뜻한 빛 같았으니 말이다. 그날 밤은 여지없이 밤새 뒤척임으로 하얗게 보냈기에 자주 써먹을 수는 없었다.


불현듯 내가 너무 ‘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잘 자고 난 다음 날만큼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방법은 많지 않지만.


어차피 이번 생을 살아야만 하는 나는 잠을 잘 잘 자거나 때로는 불면의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쉽지 않지만 잠에 끌려다니는 마음을 내려놔야, 그 집착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라고 오늘 원장님에게 말했다. 원장님은 약간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라는 강박적 사고는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무의식 속에 내게 있어 많은 것들이 그러하지만 ‘잠을 꼭 잘 자야만 한다’라는 관념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죽을 것 같이 힘들지 않다면 잠의 질(Quality)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않길 바란다는 원장님의 덕담(?)으로 2020년 올해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