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한적한 지하철을 탔다. 지친 마음에 눈을 감는다. 신나는 음악을 듣다가도 갑자기 슬픈 감정이 든다.
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서 울면 안 되는 거다.
가만히 실눈을 떠본다. 울고 있는 나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행이다.
이제 정말 참아보려 한다. 곧 눈을 뜨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만 하니까. 눈을 감고 지하철 문 앞까지 걸어갈 수는 없으니까.
두 눈에 눈물을 가득 채운 채 문 앞에 선다. 꼭 감아 후드득 떨어뜨린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역시나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타인에 관해 관심이 없다. 그래서 괜찮다고 다독인다.
이런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며 울먹이며 말하는 나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던 Y는 말했다.
“필요하면 있잖아, 그 안내견을 사줄까. 네가 눈 감고도 걸어 다닐 수 있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로에 잠시 기대 웃을 수 있던 때가 있다. 이젠 그 기억이 또 마음 아프다.
늪에 빠진 듯 우울 안에서 허우적거리던 기억이 내겐 충분히 많다.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어릴 땐 정말로 툭하면 울었다. 이때는 ‘우울’이라는 감정과는 다른 종류의 눈물이라고 본다. <정의>되지 않는 감정의 표현이랄까.
울고 있는 내게 엄마는 끝내
“왜 우니, 네 아빠가 죽었니, 네 엄마가 죽었니”
라는 말로 인제 그만 하라는 협박과 핀잔 혹은 투박한 위로를 건넸다. 어쩌면 ‘지금 부모님이 너와 함께 있어 안전하니 울지 마라, 최악의 상황은 아니니 괜찮다’ 라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마침내 그 말을 듣게 되면 난 복받쳐 더 울었다. 부모님이 내 곁에 더 이상 없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당시 부모님의 연세는 결코 많지 않았으니 그분들도 힘들었을 거다. 여리고 섬세한 마음이 꺾이고 부러지는 좌절감을 지금의 나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생전 처음 겪는 아이의 유별남에 부모님도 답답했을 지 모른다.
내면 아이 치유 전문가에 따르면 ‘우는 아이’를 못 울게 만드는 부모의 심리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고 한다. 하나는 ‘나도 그렇게 울고 싶었지만, 너처럼 못 울었어’ 다른 하나는 ‘실은 나도 지금 울고 싶은데 참고 있으니 너도 참아야 한다’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고. 구원 혹은 치유받지 못한 하나의 영혼이 또 다른 여린 영혼을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순환 고리라고 말이다.
‘‘나는 왜 계속 눈물이 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늦지 않게 찾고 싶다.
애착과 사랑 사이에 선 긋기를 하던 영혼의 해방을 위해서.
사진 출처 : 구글링 "성시경 너는 나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