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버린 시간
나 때는 그랬다.
병원에 입사한 신규 간호사들은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무렵 희망부서를 적어낸다. 외래, 검사실 같은 상근직은 해당 사항이 없다. 일단 3교대 근무부터 시작이니까. 우리가 쓸 수 있는 희망부서는 구체적으로는 수십 갈래지만 아주 폭넓게 병동, 중환자실, 특수 파트로 나뉠 수 있다. 병동과 중환자실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갈래는 내과계, 외과계이며 특수 파트는 수술실, 응급실, 신생아실, 분만실로 구분할 수 있겠다. 병동 중 신규 간호사를 받기도 혹 안 받기도 하는 곳은 정신과와 호스피스 정도?
간호부 분위기 혹은 원칙에 따라 흔히 로테이션이라 부르는 부서이동을 몇 년마다 하는 병원과 절대 안 시키는 병원이 있다. 내가 다녔던 병원은 간호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가급적 로테이션을 안 시켰다.
내 1 지망은 정신과였다. 정신과학에 매료되어 정신과 간호사가 꼭 되고 싶기보다 다른 부서에 비해 몸이 축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어서. 게다가 남들은 한번 하는 정신과 실습을 정규 실습과 선택 실습으로 3학년과 4학년에 걸쳐 두 번이나 했기에 거부감이 없어서. 실습 때 잊혀지지 않는 정신과 치료 요법은 미술치료다. 환자들과 함께 나무를 그리라는 임상 심리 선생님 말에 나는 무심코 ‘옹이’가 박힌 나무를 그렸다. 심리학적으로 성장과정에 상처가 있음을 의미하는 ‘옹이’에 대해서는 실습 전 이미 정신과 수업 때 배웠다. 나는 다만 그저 그렇게 그리고 싶었다. 미술 요법이 끝나고 임상심리 선생님은 내게 조용히 다가와 요즘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난 당시 정말로 괜찮지 않았고 상당히 불안했지만 괜찮다 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이러한 기억이 내 무의식 안에서 정신과 간호사를 하고 싶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신과 간호사가 되고 싶다기보다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의 치료나 관심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2 지망은 중환자실. 병동에는 있지만, 중환자실에는 없는 보호자의 여부가 큰 영향을 주었다. 보호자 없이 담당하는 환자들만 있으니 사람들에게 조금 덜 시달릴 것 같았다. 나는 정말 몸을 사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투철한 봉사나 희생정신 이런 성향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떠밀리듯 간호대학을 왔고 선택의 순간은 늘 존재하니까.
그 해, 정신과 병동 TO는 남자 신규 간호사로 배정되었다고 간호부 선생님이 말해줬다. 1 지망 부서인 정신과 병동에 못 가 아쉬워하는 내게 그분은 정신과를 계속 원한다면 나중에라도 부서이동을 신청하라는 희망 고문을 줬다. 그때는 부서이동이 ‘천운’을 갖고 태어나든지 대단히 합당한 논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때다. 그렇게 나는 2 지망이던 중환자실로 발령받았다. 사실 그냥 끌려갔다..
그렇게 시작한 중환자실 일이 나와 잘 맞을 리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지만, 다행히 언론에 보도되는 간호사들의 그런 태움은 없던 곳이다. 오히려 좋은 선생님들과 환자들을 만나 "일 잘한다"라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나를 어느 정도 중환자실 일에 맞춰가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극단적인 숫자로 줄어가는 체중과 연 1회는 크게 아파 입원하는 것을 객관적인 수치로만 본다면 난 분명 병원 일과 안 맞는 사람임을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3년 10개월을 버텼다. 몸을 사리고 싶던 내 바람과는 달리 나는 건강을 잃고 있었다.
결국, 병원을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