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도토리가 소중했던 그때,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고 어스름한 불빛이 번지고 있었다.
토요일, 6시, 강남역.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고 나간 갑작스러운 소개팅이다. 우리는 강남역의 유명한 커피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6시가 되기 전, 카페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오라는 남자의 친절한 문자가 설레었다. 강남역은 늘 그렇듯 사람들로 가득차 있지만 다정한 그가 궁금해 인파를 가로지르며 뛰어갔다. 도착한 카페 앞, 통화 연결음이 한번 울리자마자 바로 옆 남자가 휴대폰을 가리키며 아는 척을 한다. 역시나 뛰어오는 것이 옳았다. 그는 내게 보낸 친절한 문자처럼 선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날이 너무 추우니 우선 차를 한잔 마시자는 그의 말이 그저 좋았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가 말랑이며 쿵쾅거렸다.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음료를 골랐다. 코트 속에 넣어둔 내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졌지만, 실례가 될까 꺼내지 않았다. 남자가 음료를 주문하러 간 사이 휴대폰을 열어보니 ‘강남역 6시 소개팅 남’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자리로 돌아온 남자에게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OO님, 휴대폰이 잘못 눌리고 있나 봐요. 저한테 전화 여러 번 하셨어요” 라며 그의 작은 실수마저 재밌다고 호감을 보였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이 사람, 유머 코드 딱 내 스타일.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휴대폰을 열어보며 정말 아니라고 말했다. 뭔가 잘못됐다. 카페 밖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만남에 잊어버린 중요한 과정, 서로의 이름을 그제 물어보았다.
처음듣는 이름이다. 당황스러운 나머지 서로 죄송하다며 황급히 헤어졌다.
카페 밖으로 뛰쳐나와 "소개팅 남"에게 전화를 하자, 오늘 내가 만나기로 했던,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쌀쌀한 날씨에 한참을 기다렸을 이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좀 전의 해프닝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휑한 마음은 뭘까 했는데 쿵쾅거림이 완전히 사라짐을 느꼈다. 그럼에도 영화나 소설같은 반전은 없었다. 이를테면 설레지 않는 남자를 거리에 세워두고 선한 그에게 달려가는 것.
이런 만남이 내게 즐거울 리 없었다. 무얼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식사를 하고 인파로 붐비는 강남역을 걸었다. 집에 언제 갈까 딴생각만 했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지 모를 순간이 펼쳐졌다. 6시 정각에 만난 설렘의 그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 클리쉐처럼 나보다 예뻐 보이는 그녀와 함께.
강남역에 가면, 날이 추워지면 그날이 생각난다. 그와 남자, 결국 두 사람 모두 인연이 아니었던 그 날의 만남이 떠올라 웃는다.
그런데 서둘러 나오느라 카페에 놓고 간 음료 두 잔은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