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때의 그때
동시 한 편을 외워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아홉 살이던가 열한 살이던가 나이는 헛갈리지만 그날이 생생하다
내 방에는 읽을만한 동시집을 찾을 수 없어 고등학생이던 언니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을 꺼냈다.
윤동주 시인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라는 시집이다.
훑어보니 내가 외울 수 있을 만큼 짧은 시도 있었다.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시에 닮긴 단 하나의 의미도 모를 어린 내가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이 시를 외워 낭송했다고 생각하니 우습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동시를 기대했으나 윤동주 시를 골라와 황당했을 선생님이 물었다. 왜 이 시를 골랐는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나는 명랑하게 답했다. 길이가 짧아 택했고 태양을 사모한다는 표현이 좋았다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그 시를 외우며 걸어갔다. ‘눈 감고 가거라’라는 구절에 맞춰 난 정말로 눈을 감고 길을 걸었다. 그땐 참 순수했다. 그러다 길가의 턱에 걸려 주르륵 미끄러져 길 밖으로 떨어졌다.
아직도 책장에 꽂혀있는 시집을 보니 그날의 기억난다. 길옆을 따라 삐죽삐죽 나 있는 풀 위로 스르륵 미끄러지던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툭 털며 일어나던 그 아이를 시간을 넘어 만나고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