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을 빌리려 도서관에 가다

그때, 그때의 그때

by 아무튼 간호사

90년대 말 그러니까 20세기 말엔 정말로 많은 가요에서, 영화에서, 또 책에서 죽음을 소재로 다뤘다.

특히나 유행가 가사의 주인공들은 어찌나 불치병이 많았는지, 이게 바로 세기말 정서인가 궁금하다.


예를 들어 이지훈의 왜 하늘은, 조성모의 투 헤븐..


그즈음 나는 혹은 우리는 판타지 소설에 빠져있었다. 특히 종말과 퇴마사를 다룬 이우혁의 ‘퇴마록’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학생이던 나는 학기 중엔 퇴마록의 국내/세계/혼세/말세 편 시리즈를 모두 갖고 있는 반 친구에게 빌려 읽었다. 게다가 나는 이 친구를 혼자서 꽤나 좋아해 책 빌릴 때 혹은 가져다줄 때마다 몹시 설레어했다.


방학 중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봤는데 집에서 꽤 멀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이맘때쯤, 그러니까 눈이 내렸고 추운 겨울에, 아빠는 몇 번이나 나를 도서관에 데려다주었다. 도서관 주차장에서 아빠는 어디 가시지 않고 차 안에 계셨다. 책을 고를 때까지 한참 걸리는 나를 히터도 틀지 않고 트로트만 크게 켜고 기다리고 계셨다.


아마도 부모님은 그때 내가 빌려다 본 책이 퇴마록인지 모르실 거다. 부모님 앞에서는 세계 명작 시리즈나 ‘1984’, ‘데미안’ 같은 걸 읽었으니까. 퇴마록을 읽느라 잠을 설치고 몽롱한 상태에서도 서랍 속에 몰래 숨겨놓고 잠들던 그때가 기억난다.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것조차 아까웠던 그런 책을 요즘 다시 만나고 싶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게 난 좋다(요즘 읽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