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의 초상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by 아무튼 간호사

오늘 25년 11월 13일은 2026학년도 수학능력시험 날.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하는 일, 라디오를 켜 클래식 FM을 듣는 일이다. 오늘 아침 이재후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는 수능 날에 관한 것. 다음은 멘트 중 인상적인 구절에 관한 기사



국토교통부가 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3일 영어듣기평가 시험 시간에 맞춰 35분간 전국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전면 통제한다고 11일 밝혔다. 영어듣기평가 전·후 5분을 포함한 13일 오후 1시5분부터 1시40분까지다. 항공기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이 시간대의 비상 및 긴급 항공기를 제외한 모든 항공기의 이륙이 금지되고, 비행 중인 항공기는 3㎞ 이상 상공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번 조치에 따라 해당 시간대 140편의 항공기(국제선 65편, 국내선 75편)의 운항 시간이 조정된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1133



가 수능을 치르던 2002년 11월도 아마 그러했을 듯. 실로 많은 이가 오직 하나만을 바라며 많은 시간 준비해 온 그날의 주인공, 수험생을 위해 헌신했을 거다.


그때, 그때의 그때.

내 수능 날 아침은 새벽 일찍 엄마가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 특히 도마 대고 무언가를 써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밤새 거의 한숨도 못 자 오늘 망했다고 생각하며 일어난 아침. 고3 내내 학교 기숙사에 살며 주말에만 잠깐잠깐 집에 들렀다가 갔는데 하필이면 수능 전날 숙면과 컨디션 조절을 위해 집에 와서 폭망한 케이스랄까. 모래알 같은 밥을 먹으면서도 걱정하실까 봐 잠을 제대로 못잤다는 말은 하지 못한 채 엄마가 싸준 보온 도시락을 들고 아빠 차를 타고 수험장으로 갔다. 수능을 치고 나오니 교문 앞까지 데리러 오신 엄마아빠랑 외식을 했던가, 뭘 했더라.. 기억은 안 나지만 수능을 너무 못 봐 부모님 얼굴을 보며 울컥했던 느낌만 남은 20년도 더 된 이야기.


아마도 이재후 아나운서 때문이겠지.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푹 자서 가뿐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지하철 타러 걸어가는 길에 나 수능 날, 엄마는 상중이셨다는게 떠올랐다. 2002년 11월 어느 날, 대장암으로 고생하시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구체적으로는 수능 전 주 토요일로 기억하는데 그날, 성당에 가서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친구를 통해 들었다. 우리 가족은 기숙사에 있어 집에 안 오는 내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와 힘들게 준비한 시험에서 혹여나 나쁜 영향을 가져올까 봐 알리지를 않았는데, 외할머니댁 근처 사는 친구가 성당에서 나를 보자 “외할아버지 돌아가셨다며 너 왜 여깄어?”라는 말을 들으며 눈물이 팡 터진 기억. 그리고 외할아버지 영정 사진앞에서 꺼이꺼이 울던 기억. 흐릿한 흑백기억인데 감정은 생생한 그날의 일.

생각해 보면 수능이 목요일이었으니 장례를 치르시고 삼우제를 지내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막내딸래미 수능 도시락을 싸줘야만 했던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 엄마는 그 뒤로 몇 년 지나 갱년기 우울증을 심하게 겪으셨는데 어쩌면 첫째 딸로 친정 아버지 상을 치러야만 했던 힘든 마음이 똘똘 뭉쳐있다 어느 날 찾아온 건 아닐까.. 외할아버지가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임종은 지키셨을까. 사랑한다는 말씀은 하셨을까…


수능 날 보온 도시락에서 꺼낸 따뜻한 콩나물국과 소박한 반찬과 밥.


엄마는 어땠을까. 지금은 괜찮으실까. 퇴근하며 오늘은 엄마랑 통화하며, 저녁밥으로 뭐 만들어 드셨냐, 아빠랑은 사이좋게 지냈냐고만 묻지 말고 외할아버지 기일이 이쯤일텐데 어떠신지 꼭 물어봐야 겠다.


한 번도 생각안해 본 내 수능 날의 엄마의 안부.. 이재후 아나운서 덕분이겠지.



그때, 그때의 그때.

심장계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 심장 질환이 많이들 그렇지만 너무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계신 할아버지의 임종을 보시며 여든 살도 더 돼보이시던 아내분이 할아버지 손을 꼬옥 잡으며 조용히 반복하던 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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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투비 가톨릭이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임종을 지켜야만 한다면 나도 그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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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런 슬픈 날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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