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달리는 남자

by 서퍼스타

서른한 살인가 두 살인가... 대략 8~9년 전. 당시 난 저녁부터 새벽 2시에 끝나는 일을 다니고 있었다. 집에서 대략 3km 남짓한 거리였다. 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는데 이런 애매한 거리는 대중교통보다 자전거가 빠르고 저렴하기에 굳이 돈을 써가며 출퇴근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천(川)을 따라 난 자전거길이 잘 나 있었기에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자전거의 속도감에 가을의 싸늘한 밤기운은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나를 쾌청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무도 없는 자전거 도로를 오롯이 홀로 질주하는 행위는 엄청난 개방감과 시원함을 안겨다 주었다. 그렇게 나만의 밤거리를 즐기고 있을 때, 길 멀리서 누군가 타박타박 다가왔다. 난 고요한 정적이 깨진 불쾌감, 나의 은밀한 유희를 방해하는 낯선이에게 약간의 짜증과 함께 기묘한 공포를 느꼈다.


이 시간에 운동이라니...

그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속도를 유지했으며 후드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썼기에 그의 시선마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 역시 이 시간에 자전거를 타는 내게 불안함을 느껴 흘끗 일별했을 수 있으나, 그저 정면 일직선을 향해 질주하는 기차처럼 올곧게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기묘한 이질감이 드는 이유는 그의 걸음걸이였다. 그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었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속도와 보통의 걸음보다 못한 보폭, 두 걸음에 한 걸음은 심하게 주저앉는 듯 편차를 보이는 걸음은 나의 해방감 넘치는 새벽 2시를 묘한 공포로 밀어 넣고 있었다.


나와 그는 매일 같이 마주했다.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우리는 비슷한 위치에서 매일 같이 조우했다. 그를 지나치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저 멀리서부터 그가 다가옴을 보기에 그나마 시간이 좀 있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그를 관찰할 시간은 10초도 안 되는 짧디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쌓이자, 그의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이 가능해졌다. 그는 그저 다리 한쪽만 아픈 게 아닌듯했다. 그의 한 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손목은 툭 하니 떨궈진 채로 달리고 있었기에 그저 단순한 다리 장애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게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던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은 채 출근하게 됐다. 이유는 비가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퇴근. 새벽 2시에 난 우산을 받쳐 들고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던 길을 걸었다. 택시를 타기엔 사치스러운 거리였다.


그리고 그날도 난 그를 만났다.

따닥따닥. 따닥따닥.

깊게 눌러쓴 후드 위로 때리는 빗방울을 뚫고 걷는 것보다 못한 속도로 그는 절뚝이며 달리고 있었다. 난 순간 걸음을 멈춘 채 그를 빤히 바라보는 실례를 범할 뻔했다. 난 놀란 심정을 한 호흡 만에 얼른 재정비해 다음 걸음을 내딛었다. 여간 눈치가 매섭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처신이었기에 아마 그도 나에게 그 어떤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아니 애초에 그는 내게 시선을 둔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평소 자전거를 타고 지나칠 때보다 오랜 시간 그는 내 시야에 머물렀고 그의 발걸음도 평소보다 여러 번 나의 시야에서 내딛어졌다. 불편해 보이는 그의 몸, 불안한 그의 걸음걸음. 그런데 그런 그에게서 결코 쓰러지지 않을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 어떤 비도, 바람도, 천재지변도 그를 넘어트리고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새벽의 길에서 조우했고, 또 다른 빗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비가 한 번 내릴 때마다 날은 점차 추워졌다. 그리고 3개월 정도 했던 나의 일이 끝나고, 나는 더 이상 새벽 2시에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공원에 나가 운동을 할까 하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열풍에 얼른 문을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문득 그가 떠올랐다. 그는 과연 아직도 달리고 있을까? 그는 이제 더 빠르게 달리고 있을까? 나도 그를 만났을 때부터 무언가를 끊임없이 했다면 달라진 삶을 살고 있을까?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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