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판 지인

by 서퍼스타

묻혀 있던 아름다운 나의 추억을

봄의 새싹처럼 틔워주는 사람

나의 옛 시절을, 그의 옛 시절을

서로의 시간을 기억하고 공유하는 사람

참으로 소중한 나의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이 커지는 만큼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커진다.

딱히 추억이라는 서정적인 단어를 붙일 만큼 특별하지 않은 기억과 시간.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산책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다가

문득문득 지난 일상의 기억이 스미듯 떠오른다.

한 번씩 가게 되는 친척의 결혼식.

이름을 말해야만 누군지 분별이 될 정도로 오랜 시간 만에 만나는 친척들.

그들을 만나니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뚫고 정면에 나섰다.

내 앞에 선 어린 나는 묘하게도 지금의 나보다 진하고 또렷한 존재처럼 보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회사를 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는 참으로 좋은 사람, 현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앞으로 평생을 함께 연을 맺고 지낼 사람도 만난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늘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갈증이 있다. 그건 바로 어린 나에 대한 고립이다.

그들과 만날 때면 그들을 처음 만난 시간부터의 나만이 존재한다.


“잠시만 여기 있어.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다녀올게”

하며 어린 시절의 나와 맞잡은 손을 놓고 홀로 걸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럴 때면 나의 어린 시절은 어두운 방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을 불러줄 사람을 기다리며 점차 시간의 흙에 덮여 어느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묻힌다.

그렇게 묻힌 나를 발견할 사람을 만날 때면,

언제 묻혔는지도 모를 정도로 밝은 기운으로 봄의 새싹처럼 두터운 흙을 뚫고 나와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빛은 나의 얼굴에도 감출 수 없는 미소로 만연히 드러난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고, 그 시절의 나를 아는 이도 더 이상 생성할 수 없다.

마치 더 이상 생산이 중단된 한정판과 같은 이들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값이 오르는 클래식 명품과 같은 존재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나의 어린 시절을 대면할 수 있는 길.

나 역시 그들의 어린 시절을 소중히 간직하며 상대방이 원할 때 비춰 줘야 할 의무와 책임감이 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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