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돈다. 보고 있어도 보는 거 같지 않고 이 세상이 나를 관통해 지나가는 듯하다. 무엇하나 제대로 흡수되지 않고 물고기 배설물마냥 물결에 유영하며 되는대로 흘러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실 무슨 생각으로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건 이 빌어먹을 날씨에 비롯한다. 아니 날씨 하나만 탓하기엔 날씨가 너무 억울하겠지. 이 복잡하게 얽힌 세상만사에 어찌 어떤 일의 결과에 단 하나의 이유만 존재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세 가지만 꼽아보자면 역시나 날씨와 구린 에어컨, 먼 직장을 탓하겠다.
우선 나를 눈뜬 시체로 만든 건 부족한 수면 탓이다. 최근 얼핏 따져봐도 평균 4~5시간 정도의 수면을 하는 나이다. 물론 잠잘 틈 없는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어서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면 내 이렇게 억울한 심정이 들지는 않겠지. 시간은 충분하다. 내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은 바로 이 푹푹 찌는 열대야다.
평균적으로 11시 반에서 12시 정도에 침대로 향한다. 대다수가 그러하듯 우리는 잠들기 직전 의식에 들어간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고 핸드폰을 켜서 유튜브를 실행한다. 끼핫!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한가. 하지만 최근에 3분도 채 되기 전에 바닥나버리는 인내심과 충혈 때문에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잠을 청하고자 눈을 감지만 나의 부족한 인내심은 잠 또한 이루지 못하게 한다. 또다시 핸드폰을 쳐다보고, 다시 내려놓고를 반복하다 보면 더 이상 팔을 들어올릴 힘마저 없어지고 그렇게 포기하듯 잠에 든다. 몇 시에 잠에 드는지는 모르나 난 다시 눈을 뜬다. 몇 시지? 난 다시 한 번 핸드폰을 집어들고 시간을 확인한다. 대체로 3시 30분에서 4시 반 사이. 난 왜 이 시간에 깼을까? 그리고 다시 눈을 감으면 텁텁한 더위에 내가 깨어난 이유를 알아차린다. 선풍기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 그렇다고 문을 열면 더욱 기분 나쁜 습기가 몰려들고,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 오히려 새벽 1시 정도에 깨서 잠도 오지 않아 진퇴양난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에어컨을 켜면 되지 않느냐. 맞다. 그래서 난 에어컨을 켜고 잠든 적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 귀신같은 3시 반에서 4시 반 사이에 나는 다시 일어난다. 이번엔 추위에 의해서다. 시간이 없기에(내 정신이 버틸 시간) 바로 말하면 우리 집의 에어컨은 에너지효율 5등급의 할아버지 중고 에어컨이다. 내가 매일 같이 맞추는 24도. 왜 24냐면 25도로 놓으면 바로 꿉꿉스 습긴 찬 바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24도도 사실 나에겐 너무 춥다. 온도조절이 가능한 에어컨이라기보단 그냥 On & Off만 존재하는 에어컨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이에 난 매일 밤 더위와 추위를 넘나들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물론 내가 온도에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건 디폴트 값이기에 논쟁에서 예외되는 조항이다.
그리고 하나는 최근 출근하기 시작한 직장인데 이 때문에 난 7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긴긴 백수 생활을 보낸 나는 아직 대한민국의 부지런한 직장인의 루틴이 새겨지지 않았다. 사실 얼마 전만 해도 밤잠을 설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고? 낮에 자면 되니까! 나는야 타임 빌게이츠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내가 밤잠을 설치든 꼬박 지새우든 해는 뜨고, 하루는 시작되고, 출근은 해야 한다. 난 빼곡한 사람들로 들어찬 지하철에서 외친다. 아... 당신들은 내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계셨군요. 여기 뉴비있어요. 액면가는 고인물이지만 뉴비랍니다. 살려주세요... 아... 제발 살려주라... 창문을 열면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