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김밥이 먹고 싶었습니다
몹시 피곤하고 지친 늦은 밤이었기에
출출한 배를 달래주기에 김밥이 제격이었기에
하지만 뜻하지 않게 묵직한 김밥 봉지를 받았습니다
늦은 밤.
약속에 다녀오는 길 출출한 속을 채우기 위해 김밥집에 들렀다.
처음 보는 곳이었다.
그 당시 1년 넘게 산 동네였건만 ‘이런 곳에 김밥집이?’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의 주요 동선에 있는 길, 나름 동네 번화가 술집이 즐비한 메인거리인 곳에 약간은 생뚱맞게 자리 잡은 허름한 김밥집. 소위 잘나가는 유명 프랜차이즈 김밥집도 아니었다.
간판의 연식으로 보건데 최근 오픈해서 내가 못 알아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런 곳에 있기가 뭐한? 그런 김밥집이어서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을 터.
오로지 김밥을 향한 맹목적인 걸음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외관보다 더 허름했다.
위생상태가 살짝 걱정될 정도였지만 김밥... 김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메인거리에 위치한 만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벽에 붙은 메뉴판의 가격을 스캔했다.
다행히 이 세상 양심 품은 가격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두 번의 부름 끝에 주방에 홀로 계시던 할머니가 나타났다.
딱 봐도 ‘내가 이 구역 대빵’이란 포스를 뿜으며 훠이훠이 걸어 나오셨다.
난 김밥 두 줄을 주문했고 할머니는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가게 한편에 걸린 텔레비전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무슨’ 프로그램의 ‘누가’ 나와서 재밌게 본다며 급작스런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난 사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았기에 할머니가 말하는 ‘무슨 프로그램’이 뭔지, 거기에 나오는 ‘누구’도 잘 몰랐기에 그냥 “아... 그러세요?”하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대꾸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연스레 다른 프로그램으로 주제를 옮겼는데 얼마 전 본 다큐멘터리에 대해 말씀하시며 “동물 사는 게 사람이랑 똑같다”고 하셨다.
음... 난 역시 그 다큐를 보진 않았지만 할머니의 손에서 조물조물 빚어지는 ‘나의’ 김밥에 해가 되지 않도록 조금 더 길고 성실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요. 사람이건 동물이건 다 힘들지요.”
자기 새끼를 위해 젖을 물리는 물개는 체중의 30%가 빠진단다(할머니 피셜).
그리고 새끼가 죽어도 계속 젖을 물리며, 새끼의 사체를 먹으려 덤벼드는 독수리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불편해 보이는 거동. 쭈글쭈글한 손이 보였다.
순간 조금 전, 마치 인생 꽤나 통달한 사람마냥 “다 힘들지요”라고 말했던 기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할머니는 김밥을 건네며 “늦게까지 있었더니 그래도 하나 더 파네”라며 “허허” 웃으셨다.
난 그저 김밥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할머니께서 건넨 김밥 봉지가 묵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