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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유진 Jan 05. 2019

수술하는 의사 입장에서의  디지털 헬스케어 (1)

디지털? 헬스케어? 엑셀러레이팅? 뭡니까 그게 다?

    난 의사이자 성형외과 (정확히는 Plastic & Reconstructive Surgery - 성형 & 재건 외과 의사) 전문의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잠 못 자고 먹을 거 못 먹으면서 인턴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대부분의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난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이외의 분야에 대한 지식은 매우 얕은 편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그 분야에 대하여 좁지만 깊고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다고 믿는다. 난 성형 / 재건 외과 분야에서는 그래도 나름 전문가 - 라고 하기는 아직 부끄럽지만 그래도 국가가 인정해주고 보건복지부 장관님이 주신 전문의 자격증이란 게 있으니 - 대접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한 발짝만 벗어나도 정말 눈만 껌뻑 껌뻑 하며 다 처음 듣는 말처럼 듣고 있어야 하는 일자무식이다.

왠지 이 그림이 생각난다. 심지어 난 (아직) Ph.D 도 아니다...(눈물)

    그런 내가 정말 순전히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까) Digital Healthcare Partners라는, 나름 이 업계에서 목소리 좀 내시는 훌륭한 분들께서 의기투합해 만든, 이름도 화려한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라는 곳에 무려 파트너로 참여하게 되었다. 난 디지털도 잘 모르고, 스타트업도 잘 모르고, 심지어 엑셀러레이팅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는데... 내가? 파트너?

   

아...최대한 입다물고 있어야겠다...모르는 티 안나게...(내용은 등장인물과 관계없습니다)

     철저하게 임상 위주의 지식, 그것도 내가 주로 하는 진료와 관련된 분야의 지식만을 가진 나였지만,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런 내가 지금까지 digital technology의 도움을 나름대로 진료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모든 의무 기록의 작성과 방사선학적 검사를 포함한 환자의 모든 검사 결과를 컴퓨터를 통해 보게 된 것이다. 필자가 교육받고 수련받은 서울대학교 병원에 EMR, 즉 electronic medical record 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 2004년 이후부터이므로, 사실상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EMR 이전 시대에는 차트와 X-ray 필름 찾아오는 것 이외의 인턴 업무는 별로 없었다 (피 뽑기,  밥 시키기 정도..).

    EMR 과 같이 발전한 PACS (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ng System), 즉 의료영상 저장/전송 시스템은 의료 현장을 극적으로 변화시킨 또 다른 주인공이다. 모든 영상검사를 컴퓨터를 통해 볼 수 있게 된 이후 의료영상 데이터의 활용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전까지는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영상검사 결과의 3차원 구현 및 측량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행되고 있고, 그러한 이미지들은 주로 눈으로 바로 볼 수 있는 몸의 '바깥쪽'을 수술하는 성형외과 의사들에게도 큰 변화를 주었다. 수술 전 정확한 분석과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졌고, 수술 후의 정량적 평가 및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이는 모두 더 좋은 수술 결과 및 환자 만족, 발전된 임상 연구로 이어졌다.

필자의 논문에서 발췌. 똑똑한 이 프로그램들은 적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또한 내가 진료하던 주 영역 중 하나는 소아환자들의 외상 및 선천 기형 질환이었는데, 환아들 중 대부분이었던 대개 2~6세가량의 아이들은, 흰 가운을 입은 아저씨를 보게 된 그 순간부터 그 누구도 제어할 수가 없었다. 특히 수면마취를 하지 않고 봉합사 (실밥) 제거를 하거나 간단한 비인두(입안) 내시경 검사를 해야 되는 불쌍한 의사 (필자 본인)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외래를 보고 난 후 저녁때가 되면 수많은 아가들의 비명소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릴 정도였다.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해보고자 VR 헤드마운트를 아이들에게 씌우고 아이들이 뽀로로와 같이 헤엄치면서 검사나 치료를 받아보게 한 적도 있었는데, 이 역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러면서 나도 모르게 디지털 헬스케어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셈이다.

제발...가만히 좀 있어봐...(왼쪽이 필자. 절대 해를 끼치는 장면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그러면서 하루하루 내가 진료하는 현장과, 수술하는 수술실에서 나 스스로 불편했던 것, 혹은 환자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하는 약간은 무식한 질문을 던지면서 원내 Internet of Things 연구회 일도 맡게 되고, 의료와 IT 간의 접점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와중, 우연한 기회에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서 나름 끗발(?) 좀 날리고 계시던 어떤 분 (DHP founder 인 최윤섭 대표)을 만나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친해지게 된 것이 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뭡니까 이 간지...

    그리하여 당시 신생 엑셀러레이터 (사실 현재도 신생...) 였던 Digital Healthcare Partners라는 조직에 advisory board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DHP의 포트폴리오 중 수술 술기 교육을 VR 기기를 통하여 혁신하고자 하는 기업이 있었고, 처음에 나는 그 기업의 도움을 좀 받아보려는 얕은 수작(?)으로 접근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였고, 조금씩 자문하는 회사도 더 늘어나게 되었다.


    DHP에서의 나의 경험이나, 나 스스로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음 편을 통해 이야기해보겠다 (분량 조절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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