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의 오리들

타인의 무신경함에 대하여

by 수리


사무실의 정적을 깨는 건 언제나 소리였다.


규칙적인 저작음, 신경질적인 키보드 타건음. 누군가에게는 그저 허기를 채우는 일상의 소리겠지만, 나에게 그 소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 공간의 신호였다. 하루에도 여러 번 이어폰을 끼고 그 소음을 차단했다. 하지만 조직이 강요하는 무거운 공기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용의 꼬리’라도 되기 위해 이곳에 들어갔었다.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이 움직이는 조직에서 꼬리로서의 역할만 다해도 내 삶은 안전한 궤도에 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안락함이 실은 서서히 날개를 퇴화시키는 가두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전체 시스템 고도화’라는 거창한 명분을 입버릇처럼 읊조렸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손발을 맞추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좁은 우리에 갇힌 오리들 같았다. 물 위에서는 우아한 척 발짓을 해대지만, 수면 아래에선 서로의 발을 할퀴며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뿐이었다. 위기 앞에서는 목을 빼고 꽥꽥거리며 책임이라는 먹이만 서로에게 떠넘겼다.


그 비겁한 소음의 합창 속에서, 나는 내가 용의 꼬리가 아니라 백조도 아닌 고작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단 오리들의 진흙탕 싸움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고민의 끝에 던진 아이디어들은 실무자들의 단호한 가위질 앞에 매번 무력하게 잘려 나갔다. 명분을 쫓는 윗선과 안주하려는 실무진 사이의 괴리 속에서, 이들은 막상 자신의 업무 방식이 1mm라도 바뀌는 것엔 질색하며 방어막을 쳤다. 결국 고도화라는 이름의 거창한 깃발은 사라지고, 오픈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마주한 것은 아무런 변화도, 개선도 없는 껍데기뿐인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프로젝트의 전체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지도 않았던 나에게, 그 결과물은 이상하게도 나의 무능처럼 다가왔다.


전권을 쥐어주지도 않았으면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무자의 역량을 탓하는 조직의 생리. 그들은 실패의 책임을 아래로 흘려보내며 안도했고, 나는 내가 지불하지 않은 무능의 영수증을 강제로 떠안으며 자괴감에 빠졌다. 이어폰을 끼고 소음을 차단해도, 조직이 강요하는 그 무거운 공기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이런 소음은 결코 낯선 손님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농인이었던 할머니의 곁에서 들었던 이해하기엔 버거운 날카로운 쇳소리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배경음악 같은 존재였다. 소통이 거세된 채 허공을 맴돌던 그 소리는 때로 엄마를 몰아세우는 칼날이었고, 어린 나에게는 출구 없는 고립의 공포였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사무실에서 마주하는 쩝쩝대는 소음은 그 쇳소리와 기묘하게 닮아 있었다.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았다. 상대를 헤아릴 마음이 전무한 자들이 내뱉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향한 소리의 독점.


그래서 나는 안다. 피드백 없는 조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나는 한때 그걸 몸으로 배운 적이 있다. 초반에 재능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오만해진 나머지 연습을 게을리하다 대회를 망쳤던 열아홉의 기억은 여전히 서늘하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전체의 조화를 깨뜨렸던 그 순간, 정작 아무도 내 실수에 화를 내지 않았기에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의 오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실수를 권위로 덮으려 하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 침묵이 더 위험하다.


결국 나는 짐을 싸기로 했다.


누군가는 대책 없이 둥지를 떠나 이 도시에서 어떻게 버틸 거냐고 묻지만, 나에게 이번 퇴사는 화려한 도약이 아니다. 그저 시선을 거두는 결단이다. 쩝쩝대는 소음도, 내가 지불하지 않은 영수증들이 굴러다니는 바닥도, 이제 더 이상 내 풍경이 아니다.


새가 뒤를 보지 않는 건 미련이 없어서가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다시 붙잡힐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평생을 소리치다 추락한 어느 새의 최후를 보았기에, 나는 쩝쩝대는 사료의 유혹에 발이 묶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오늘,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결단 앞에서 문득, 이 소음보다 훨씬 먼저 내 귀를 가득 채웠던 아주 오래된 소리 하나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