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위 10센티미터의 시선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by 수리



누구에게나 세상의 크기는 자신의 눈높이만큼 정의된다. 태어날 때 도시의 어느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터를 잡았던 나에게, 세상은 원래 지면에서 10센티미터 떠 있는 곳이었다.


그 낮은 공간은 누군가에겐 ‘가난’을 생각나게 할 수 있지만 내게는 아늑한 요새였다.


나는 미술학원 유치원을 다니며 나만의 세상을 그려나갔다. 하얀 스케치북 위에서 만큼은 반지하의 눅눅한 벽지도, 창밖의 회색빛 아스팔트도 내가 원하는 선명한 색들로 다시 태어났다. 선생님의 칭찬과 크레파스와 물감 냄새가 가득했던 그곳에서 나는 내 적성을 발견했고, 무언가를 창조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나에게 세상은 지면 위 10센티미터의 좁은 틈이 아니라, 미술학원에서 펼쳐지던 무한한 색채의 공간이었다.


동생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도 특별한 사건 없이 평온했다. 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문으로 다가가 구경하는 대신, 밖으로 달려나갔다. 지면 위 10센티미터의 틈으로만 보던 하얀 눈송이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동네를 뛰어다니던 기억이 선명하다. 차가운 공기와 뺨에 닿는 눈의 촉감은 우리가 낮은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할 만큼 자유로웠다.


부모님이 비운 집안에서 어린 동생이 큰방에 갇히는 사고가 있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당황하기보다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안쪽에서 문고리를 돌리는 법을 몰랐던 동생은 "안 열려, 안 돌아가!"라며 겁에 질려 울먹였다. 나는 큰방과 연결된 낮은 창문 앞에 쪼그려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깊숙이 수그린 채 창틀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문고리 잡고, 돌려!"


하지만 나의 외침에도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결국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실 때까지 동생과 나는 창문을 사이에 둔 채 한참을 그렇게 대치해야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나는 그때의 내 자세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동생에게 목소리를 닿게 하려고 바닥에 기다시피 쪼그려 앉아야 했던 이유. 내 눈높이가 세상의 발등과 맞닿아 있었던 이유. 그제야 내가 살던 곳이 '반지하'였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였던 나에게 그 쪼그린 자세는 구차함이 아니라 동생을 향한 당연한 마음이었을 뿐이다.






낮은 창문을 통해 내가 보았던 세상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등과 구두뿐이었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 '구두'는 지면 위의 세계로 나가는 유일하고 화려한 것처럼 느껴졌을 지 모른다.


어느 날 엄마가 사준 새 구두를 신나서 집 근처 교회에 신고 신발장에 놓고 들어갔는데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 당황해서 울거나 찾아달라 애를 썼을 법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저 덤덤하게 엄마에게 구두를 잃어버렸다고 사실을 말했다. 잃어버린 건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구두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대단히 갖고 싶은 것도, 간절히 바라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귀여운 소품들을 모으고 집 안에서의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나를 보며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그때는 미처 다 쓰지 못했던 마음의 조각들을,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된 내가 하나씩 꺼내어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네 식구가 좁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반지하. 그곳에서의 어린 시절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무렵 조용히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 가족은 나만의 색을 그리던 그 작은 요새를 떠나,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거대한 변화이자, 그 시절의 고요했던 정적과는 전혀 다른 주파수를 가진 새로운 세계로의 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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