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자카르타
자카르타에 사는 이들이 꼭 다운로드해야 하는 앱이 두 가지 있다. 고젝(Gojek)과 그랩(Grab)이다. 처음엔 차량 공유 서비스 앱, 인도네시아판 '우버'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쿠팡과 타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를 한꺼번에 합쳐놓은 앱, 배달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가 가능한 통합 앱이다. 마사지, 청소, 마트 장보기, 에어컨 수리, 차 수리 등 배달 안 되는 것이 없었다.
자카르타에서 고젝과 그랩이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나는 첫 출근을 하며 찾았다.
첫째, 자카르타엔 인도가 없다. 구글맵으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km 남짓. 30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그래도 아침엔 걸을만할 것 같아서 걷다가 땀범벅으로 동료들과 첫인사를 했다. 더운 날씨는 그렇다 쳐도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건지 '인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걷다 보면 인도가 사라지고, 내 옆에 오토바이가 사람을 칠 듯이 지나가고, 자카르타는 보행자 친화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첫 출근을 걸어서 했다는 내 말에 직장 동료들이 "고생했다"며 위로해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해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자카르타 곳곳에 인도가 깔렸다고는 하지만 대로를 제외하곤 제대로 된 인도를 찾기 드물다. 인도가 잘 깔려 있으면 그곳은 좀 사는 동네다. 보행자 < 차 < 오토바이 순서로 우선순위가 정해진 도시에서 걸어 다니면 손해다.
둘째, 대기오염이다. 서울에서도 미세미세 앱을 깔고 살았는데, 여기서도 실시간 대기오염 측정 앱인 'Air Visual'을 매일 확인하며 산다. 서울에 살 때 공기가 안 좋다고 불평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 마스크를 안 쓰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다가 목구멍이 매캐해지는 것을 경험했고, 그 뒤로 공기 오염이 심한 날 아침에는 걸어서 15분 거리인 회사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택시를 타고 간다. 이게 다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서... 인도의 부재와 세계 최악 수준의 대기오염은 집 근처에 회사가 있는 외국인도 고젝과 그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 열악한 대중교통도 고젝과 그랩의 성공의 바탕이다. 인구 1천만 명이 넘게 사는 자카르타에 지하철이 올해 초 개통했다고 하면 말 다했지. 인구 1천만 서울에 촘촘한 지하철 노선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하철이 개통하고 나서 자카르타로 이사 온 나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최근엔 도심과 공항을 잇는 공항철도까지 개통해 교통체증 때문에 비행기를 놓치는 일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자카르타 도심에서 국제공항까지 차로 빠르면 40분 거리에 주파할 수 있지만 예전엔 교통 지옥에 한 번 휩쓸리면 3시간 넘게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아, 나는 역시 운이 좋구나ㅠㅠ
외국인으로 고젝과 그랩을 이용하면서 곤란할 때는 기사님들이 전화를 할 때다. 문자로 소통할 땐 구글 번역기를 적당히 쓰면 되지만, 전화를 하면 "no bahasa, sorry" (인도네시아어 못해요ㅠㅠㅠ) 이렇게 말하고 끊어야 한다. 주변에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으면 나 대신 여기가 어딘지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면 되는데, 혼자 있을 땐 조용히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내야 한다.
저렴한 인건비도 고젝과 그랩의 성공에 힘을 보탠 듯하다. 아직까지 마사지 배달을 시켜본 적은 없지만, 현지 친구들은 물론 외국인 동료들도 피곤할 때 마사지를 '배달'한다. 나는 청소 서비스인 '고클린'을 고젝으로 주문해 한 번 써봤다. 우리 돈으로 8천 원 정도 내니 청소 요정님이 오셔서 2시간 동안 내 아파트를 깨끗하게 청소해 주셨다. 살면서 돈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내 집 청소를 시켜본 적이 처음이어서 어색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아주머니와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다가 혼이 났다. 아주머니가 구글 번역기를 써가며 말씀하셨다. "It's my job." 큰 도움이 안 되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말 같았다...
커피 한 잔도 배달이 가능하다. 한국에 살 땐 최소 배달 금액이 만 오천 원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어서 분식이라도 시켰다간 혼자 배 터지게 먹어야 한다. 그런데 자카르타에선 고젝으로 집 근처 커피숍 커피 배달을 주문하면 8000루피아, 우리 돈 500원에 가능해 주문하면서도 괜히 미안하다. 내가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인도네시아어가 되면 "1인 가구여서 한 잔 밖에 못 마셔요. 죄송합니다" 이런 설명이라도 할 텐데, 지금 내 인도네시아어 수준으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말 밖에 할 수 없다.
고젝과 그랩이 없었다면 자카르타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삶은 더 고달팠겠지. 고젝, 그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