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자카르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기도의 나라다.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한다. 그래서 매일 다섯 번, 집 주변 모스크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예배 시작을 알리는 기도문인 '아잔'이 방송된다. 처음에 인도네시아에 왔을 땐 기도문 읽는 소리인 이 아잔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이제 몸도 귀도 적응이 됐는지 새벽에도 깨지 않고 잘 잔다. 아잔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남자들인데, 무슬림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여자는 기도문을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기도 습관은 삶 곳곳에 문화처럼 스며들어 있다. 가끔씩 일보다 기도가 우선시되는 경우도 종종 직면하면서 당황스러울 때도 많았다. 4월 말쯤, 라마단 금식 기간 중에 피부과를 찾은 적이 있었다. 스노클링을 하면서 수영복만 입고 등을 고스란히 태양에 노출했다가 피부가 빨갛게 익어 물집까지 생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물집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당황해 퇴근하자마자 큰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대기 인원이 없어서 바로 피부과 의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분명히 내 앞에 대기 환자가 없는데 20분 넘게 기다리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단식을 끝내고 기도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환자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20분 넘게 기도하는 의사가 한국인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라마단 기간을 매년 겪는 무슬림에게는 당연한 문화인 것 같았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불편한 내 표정이 다 드러났을 것이다. 기도를 끝마친 의사는 내 피부를 확인한 뒤 꽤 심각한 모양이었는지 이런저런 약을 여러 개 처방했다. 무슬림 친구들에 따르면 이슬람교가 융통성 있는 종교라고 하니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에서는 기도하느라 환자가 기다리는 일이 없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병원을 찾은 날이 금요일 점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금요일 점심 무렵 하는 기도는 예배 시간이 길기 때문에 내 경험상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았다. 공휴일이었던 금요일 오전 11시 클라이밍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무슬림인 클라이밍 선생님의 기도 시간과 겹쳐서 수업이 끝나니 거의 3시가 다 돼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은 12시가 되자 "아 여러분, 저 기도하고 올게요~"하고 쿨하게 떠나 1시쯤 되돌아왔다. 인도네시아 동료들과 일한 지도 벌써 1년 6개월, 금요 기도엔 나도 면역이 생겼다. '무슬림 남성이 금요일 기도를 세 번 이상 빠지면 더 이상 무슬림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금요 기도 시간을 지키려는 신실한 무슬림들이 존경스러울 때도 있다.
자카르타로 다시 돌아온 뒤 오랫동안 못 본 직장 동료 두 명을 우리 집에 초대했을 때도 그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아잔 소리가 들리자 친구 A가 "지금 기도 시간인데 나 기도해도 될까?"하고 묻더니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것은 전신을 다 가리고 얼굴만 내놓는 의상 차도르였다. 아파트 바닥이 대리석이어서 맨바닥에서 기도를 하면 무릎이 아플까 봐 나는 내 요가 매트를 깔아줬다. 기도를 할 때도 방향이 있는지 또 다른 무슬림인 친구 B는 친구 A를 위해 스마트폰 어플에서 나침반을 찾은 뒤 방향을 잡아줬다. 친구 B의 머리가 향한 쪽은 우리 집 부엌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고, 하루에 기도 다섯 번은 못해도 네 번은 꼭 한다는 친구 B는 왜 기도를 안 하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생리를 할 때는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들 말대로 융통성 있는 종교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무슬림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화가 날 때가 있다. 얼마 전 주말에 거래처 사람들이 직장 동료 C와 나를 점심 자리에 초대했다. 약속은 1시, 나도 10분 늦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지만, C는 자그마치 36분이나 늦었다. 거래처 사람들과 업무를 직접 담당한 사람이 C였기 때문에 함께 식당으로 들어가려고 앞에서 20분 정도 기다렸지만 1시 30분이 될 때까지 C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1시 10분경 식당이 있는 쇼핑몰에 도착했지만 화장실에 갔다가 점심시간에 맞춰 기도를 하니 시간이 더 늦어졌다고 했다. 아... 그놈의 기도... C 앞에선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차라리 약속 시간을 늦추든지 미리 기도를 할 수는 없니?'라고 되묻고 싶었다. 거래처 사람들은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은 이유가 우리가 고객사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인지, 묻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빨리빨리 문화와 효율성에 익숙한 한국인은 이렇게 인도네시아에서 그들의 기도를 통해 기다림과 인내를 배운다. 하지만 한 번씩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