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자카르타
학부 졸업 후 중간에 1년 공부를 한 것을 제외하면 총 10년간 회사 생활을 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만 7년 1개월, 두 번째 회사에서 11개월, 현재 회사에서 만 2년, 정확하게 딱 10년이다. 10년 전 첫 번째 회사에서 일했던 20대 초중반의 나를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땐 경험도, 실력도 없으면서 감정이나 열정이 앞섰을 때가 많았고, 업무 중에 발생한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 현 직장 퇴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11년 차 직장인으로서 내가 경험을 통해 얻은 조직 생활 적응법, 리더 별 대처법을 정리해보려 한다.
내 상사가 어떤 리더인지 파악할 것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어떤 상사 밑에서는 잘 통했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른 상사 밑에선 전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신문사였던 첫 번째 회사에 다닐 때는 1년마다 정기 부서 이동이 있어서 10명 가까운 상사를 만났다. 운이 좋게도 내 인생 첫 조직 생활의 상사는 좋은 리더였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리더란 인품과 실력 둘 다 갖춘 사람이다. 본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부서원들에게 표현하지 않았고, 업무에 문제가 있으면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팀원들을 설득시키는 리더였다. 좋은 리더 밑에서 일할 때는 크게 고민할 일이 없다. 그의 리더십을 믿고 따라가면서 내 몫을 잘 수행하면 된다.
문제는 나와 맞지 않는 리더를 만날 때다. 좋은 리더, 나쁜 리더로 나누는 것보다 나와 맞는 리더, 맞지 않는 리더로 구분하는 것이 더 낫겠다. 나와 맞지 않는 리더는 강압적이고, 자신의 감정 기복이 일과 동료를 대할 때 반영되는 사람이다. 선후배 서열이 엄격한 언론사에서 선배의 권한을 휘둘러 자신에게 유리하게 업무 배정이나 근무 스케줄을 바꾸는 사람도 만나봤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거나 새로운 부서에 배정받았을 땐 매일 업무를 같이 해야 할 직속 상사의 리더십 스타일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상사 유형별 대처법
1) 독불장군형
독불장군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들은 부하 직원의 건설적인 피드백을 싫어한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해서다. 이미 자기 머릿속엔 상사가 원하는 업무 방식과 방향이 다 정해져 있다. 이런 리더들은 팀원들과 소통이 잘 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아무리 건설적인 피드백이라도 자기 의견과 다르면 반대하는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나는 나의 상사에게 대책을 제안할 땐 주로 이런 방법을 썼다.
"XX님. 말씀하신 방법대로 업무를 추진해 보았는데 ~~~ 이유 때문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조달팀에서는 이렇게 하라고 조언을 해주던데 이 방식은 어떨까요?"
독불장군형 리더들은 자기 의견이 부하 직원들의 의견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하는 식의 커뮤니케이션은 잘 먹히지 않는다. 대신, 조달팀, 인사팀 등 전문성이 있거나 권한이 더 많은 부서의 의견을 토대로 조언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내 경험상 먹이 사슬 피라미드 제일 밑에 있는 자기 부서 팀원 이야기는 잘 듣지 않아도, 자기보다 권한이 있거나 전문성이 있는 다른 부서 이야기는 잘 듣는다.
나는 상사와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사실, 독불장군형 리더와 일하며 해법을 찾기 위해 심리 상담 전문가와 상담을 두 차례나 받기도 했다. 상담을 통해 느낀 것은 독불장군인 상사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여러 번 오갔는데, 내가 한국이나 인도네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상사에게 보고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한 번은 상사에게 "저 오늘 인도네시아에 잘 도착했습니다!" 이 문자 한 번을 보냈더니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웃는 이모티콘을 붙여서 친절한 답장이 온 것이었다. 그렇다. 내 상사는 보고받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 업무 할 때도 그랬다. 본인이 요구하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하면 항상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문자 메시지 하나가 나의 직장 생활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2) 무능한 여우형
제일 답 없는 스타일이 무능한 여우형이다. 능력은 없지만 자기 이익만 잘 챙기는 여우 같은 스타일. 꼬박꼬박 찍히는 월급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적다고 항상 불평하는 스타일이다.
직속 상사는 아니지만 나보다 직책이 높은 팀원이 딱 무능한 여우였다. 부서에서 나만 유일한 싱글이었는데, 앞으로 가족과 주말에 더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일요 근무를 싱글인 내가 몰아서 하면 안 되겠냐고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리더를 만났을 경우엔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저런 개소리를 무시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내 경험상 무능한 여우형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팀원이나 부하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일 잘하는 팀원이 나가면 자기가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민주적 리더형
팀원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팀원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 업무 성과를 높이고 동시에 팀원의 성장을 돕는 리더! 겸손하지만 일을 잘하는 리더! 다른 부서는 물론 외부 기관과도 관계가 좋은 리더! 업무 성과와 팀원의 만족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리더! 최악의 리더도 만나봤지만 이렇게 이상적인 리더도 몇 명 만나봤다. 민주적 리더십을 장착한 팀장님은 해외 출장이나 팀원들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서 배정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런 리더 밑에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나도 이런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지 배우는 자세로 임하면 된다. 이런 리더를 만났다면 당신에게 천운이 온 것. 부서 이동이 잦지 않은 회사라면 최대한 이 리더 밑에서 오래 버틸 것!
한국에서 8년, 인도네시아에서 2년, 총 10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만난 가장 흔한 유형의 리더는 독불장군형이었다. 강압적인 리더십은 팀원을 지치게 만들고 사기를 저하시키지만 리더 입장에서는 힘으로 누르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독불장군 밑에 있다가 2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직원도 여러 명 봤다. 어쩔 수 없이 독불장군 밑에서 일해야 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으며 외교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적극 권한다. 그리고 다양한 리더를 경험하며 나중에 내가 리더의 자리에 갔을 때 민주적 리더십을 휘두를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