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서핑) 터틀롤에 성공했다

어쩌다 자카르타

by 수리영

이번에 서핑을 배우기 위해 선택한 해변은 바투 볼롱 (Batu Bolong)이다. 창구에 있는 바투 볼롱은 초급자는 물론 중상급자들이 파도를 타기에도 여러모로 좋은 해변이라고 어디서 주워 들었다. 구글로 바투 볼롱에 있는 서핑 스쿨을 검색해 한 곳을 찾았고, 그렇게 나의 발리 서핑 스승인 인드라를 만나게 됐다. 인드라네 서핑 스쿨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머무르는 숙소까지 픽업이 가능했고, 내가 이번 서핑 강습을 통해 향상하고 싶은 기술 또는 실력이 무엇인지 물어봤기 때문이다! 보드 위에 이제 겨우 서는 나에게 서핑 기술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나름대로 목표는 있었다. 터닝과 혼자서 파도 잡기. 앞으로만 가면 재미가 없으니 터닝을 해보고 싶었고, 서핑 선생님이 없어도 혼자 파도를 탈 수 있는 실력을 기르고 싶었다.


맨 밑에 깔려있는 노란색 롱보드가 내가 연습한 에폭시 롱보드다.


세트로 몰려오는 파도들. 흰색으로 깨지는 부분을 피해 파도의 어깨인 파란색 부분(?)으로 패들링해야 해변으로 휩쓸리지 않고 라인업까지 갈 수 있다. 아니면 터틀롤ㅠㅠ



하지만, 인드라와 첫 수업을 하고 나서 나는 목표를 수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한국의 장판 파도에 익숙했던 나는 바투 볼롱의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파도에도 겁을 먹고 말았다. 인드라는 "서핑을 안 한지 오래됐으니 이번에 일주일 동안 강습하면서 파도랑 친해지는 연습을 해보자"며 마음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 겁먹고, 마음을 급하게 먹으면 서핑은 더 어려워진다면서 친절하게 나의 강습 목표를 수정해줬다. 나의 장비는 롱보드 에폭시 8피트. 스펀지 보드보다 약간 무겁고 짧았지만 그래도 탈 만했다.


인드라는 나를 보자마자 "수영할 줄 알아?"라고 물었다. 내가 수영을 못하는데 서핑을 하는 사람도 있냐고 되물으니 수영을 할 줄 모르는데 서핑을 하는 한국인 학생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고 했다. 나의 스승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한국 학생을 많이 가르쳤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 학생이 오면 세 가지를 가르쳐야 해. 서핑, 수영, 그리고 영어 ㅎㅎㅎㅎ."


라인업까지 가는 게 일이다


서핑 고수들은 잘 알겠지만 서핑의 기본은 패들링이다. 파도를 타는 '라인업'까지 나가기 위해선 패들링을 통해 여러 개의 파도를 뚫어야 한다. 작은 파도가 올 땐 보드를 누르는 푸시업 하고, 파도가 조금 클 경우 보드를 뒤집어 물 밑으로 들어가는 '터틀 롤'을 해서 파도를 넘어간다. 물론 숏 보드를 타는 서퍼들은 다이빙 덕이라고 하는 멋있는 포즈로 파도를 뚫고 나가지만, 롱보드 서퍼는 이런 여러 기술을 익혀서 최대한 힘을 덜 쓰면서 라인업까지 나가야 한다. 물 밑에서 보드를 잡고 숨을 참아야 하는 터틀 롤은 설명만 들어도 무서웠다.


파도와 친해지는 첫째 둘째 날이 지나자 셋째 날부터는 자세 교정이 시작됐다. 보드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무릎을 너무 구부렸더니 나의 스승은 '똥 싸는 자세'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캠코더로 영상을 찍어서 분석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억지로 보드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다리를 굽히고 똥 싸는 자세로 보드에 서서 파도를 타고 있었다. 인드라는 "발리에서 이 자세를 보고 똥 싸는 자세라고 해. 다리를 너무 굽히지 말고 조금 펴도 안 넘어진다"라고 조언했다.


5일간 이어진 맹 훈련을 통해 배운 또 다른 사실이 있다. 내가 시선이 향하는 곳이 곧 보드의 방향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왼쪽으로 보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보면 오른쪽으로 가는 단순하지만 신비한 경험을 했다. 물론 발을 쳐다보다가 바다로 처박는 경험도 했다.


생존의 터틀 롤


롱보드 밑에서 큰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자세. 터틀 롤이라고 한다. 출처: https://www.malibumakos.com/what-is-a-turtle-roll-a


매일 두 시간, 다섯 번의 서핑 수업으론 초짜의 실력을 높이기에 한계가 있었다. 2021년 5월, 일주일 휴가가 승인되자마자 나는 다시 발리로 향했다. 4월엔 바투 볼롱 파도와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면, 5월엔 쫄지 않고 더 큰 파도를 넘어 더 멀리 있는 라인업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4월엔 인드라 서핑 스쿨에 손님이 나 하나였지만, 5월엔 한 명 더 있었다. 새 손님이 영어를 할 때 미국식 억양이 세서 처음에는 미국인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서핑을 시작했지만 서핑 실력은 나보다 훨씬 앞섰다. 해변 앞쪽에서 알짱거리는 나와 달리 그녀는 (이제부터 A라고 하겠다) 인드라와 함께 훨씬 더 먼 라인업으로 가 긴 파도를 타고 있었다.


부족한 내 실력과 비교하며 질투 비슷한 감정이 생기려고 할 무렵, A의 나이를 알고 난 뒤 마음이 편해졌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 스케이트보드도 잘 타고, 축구도 하는 A는 간헐적으로 서핑을 하는 생활 체육인인 나보다 더 유리한 생체 나이와 운동 신경을 갖고 있었다. 인드라는 "너도 느리지만 실력이 늘고 있는데 왜 자꾸 비교하려 드냐"며 나를 나무랐다. 그래, 느리지만 나도 성장하고 있다... 18세와 비교하지 말자.


더 큰 파도를 넘기 위해선 4월 수업에는 무서워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터틀 롤을 익혀야만 했다. 큰 파도를 만날 땐 보드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는데, 저 멀리 떠나간 보드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체력이 급격히 바닥났다. 그러다가 파도에 휩쓸려 해변으로 계속 떠내려 가면 그날 서핑은 망하는 것이었다. 인드라는 A와 더 먼 라인업으로 나가고 나는 인드라의 동료인 로니와 터틀 롤 연습을 하기로 했다. 로니는 “파도가 너를 덮치기 직전에 보드를 뒤집어 물속에 들어가서 숨을 2~3초 정도 참으며 보드가 파도에 밀리지 않도록 팔을 뻗어 살짝 미는 것이 포인트”라고 했다. 만약 큰 파도가 연속으로 여러 개 올 경우에는 보드 위에 올라오지 말고 재빨리 보드를 다시 뒤집어 체력을 아끼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내 몸이 따라줄지는 파도를 만나봐야 안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큰 파도를 보니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푸시업으로 넘어갈 수 없는 파도가 나를 덮치려 하자 죽기 살기로 터틀 롤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하면 되는구나!!! 터틀 롤이란 이런 것이구나! 로니의 말대로 인정사정없는 큰 파도가 두 세 개씩 세트로 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 옆에서 파도를 넘던 초보 서퍼가 자신의 롱보드를 놓치는 바람에 터틀 롤을 하고 있는 내 위로 초보 서퍼의 보드가 덮쳐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어쩐지 다시 보드를 뒤집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게 쉽지 않다고 했더니 초보 서퍼의 보드가 내 바로 위에 있었던 것이다. 로니는 큰 파도가 와서 터틀 롤을 할 수 없고 자신의 보드를 어쩔 수 버려야 할 땐 주변을 살피면서 사람이 없는 쪽으로 보드를 놓아야 한다고 했다. 서핑을 하다가 다치는 경우는 대부분 저렇게 자신의 보드를 잘 간수하지 못하는 이들의 보드에 맞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일곱 번째 서핑 수업을 하며 터틀 롤 자세를 드디어 익혔다.


바투 볼롱 옆에 있는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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