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길었다

까마중 3

by 수리송선

(20251011)

예상은 했었다. 작고 귀여운 꼬꼬마 까마중이 누렇게 무른 잎사귀들을 흐느적 젖어서는 줄기를 말아버렸다.

10월 3일 금요일 제헌절을 시작으로 추석까지 길게 연결된 연휴열차는 햇살이 거의 없이 지나갔다. 비만 내렸다, 그쳤다, 거세게 내렸다, 내리는 둥 마는 둥 내렸다를 반복했다.

아침 일찍 비를 맞으며 도착한 강의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까마중을 보러 갔다. 목요일 수업은 여유가 없어 토요일에 보다 보니 14일 만의 만남이었다.



꽃은 무르다 멋해 형태가 없어지고, 잎사규ㅣ도 물러 투명해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맺은 열매가 까마중의 생의 목적을 위해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다. 과연 그 소망은 이루어질 것인가?

돌틈에 난 생각보다 굵고 단단해 보이는 줄기 때문에 어떻게든 내가 따먹을 수 있을 열매의 완성을 기대했는데.....

사진을 찍고 강의실로 들어가기엔 기분이 언짢다.

건물을 벗어나 본다.

건물 오른쪽으로 돌면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재미로. 계단의 이름이다. 가파르고 굽이치는 계단과 남산케이블카로 이어지는 도로와의 높이 차로 계단은 벽으로 둘러져있다. 덩굴식물 벽을 기어 다니는 가운데, 선명한 형태와 단순한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 2개가 나란히 있다. 녹색을 잃은 덩굴줄기가 그림 위에 빗금을 긋고 있다.

축축한 바닥, 회색빛 하늘. 걷는 길이 우중충하다.

그나마 촉촉함을 머금은 식물들이 작은 화분과 화단과 틈바구니에 자리하며 반짝인다.

꼬꼬마 까마중의 모습이 머리에 들어앉아서인지 자꾸 생각난다. 지금 나 같다.

연휴와 맞물린 긴 가을장마 덕에 풀들에 쑥쑥 컸는데, 나의 꼬꼬마는 작은 틈의 적은 토양에 물빠짐이 쉽지 않은 탓에 그렇게 된 것이다.


얄밉게도 화단에 까마중이 보인다.

싱싱하다.

계단의 끝에는 '한아름'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크게 자라 열매를 잔뜩 매달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녀석까지 있다.

참 얄궂다.

빗물을 입고 잔뜩 매단 까맣게 익은 열매를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내 간사한 웃음을 짓고 열매를 딴다. 그리고 먹어본다. 5cm 정도의 구슬들을 입에 넣다 이내 얇은 껍질이 톡톡 터지고, 자잘하고 부드러운 씨앗의 질감이 재밌다. 농익지 않아 상큼함과 기분 좋은 단맛이 혀를 감싸고 침샘을 자극한다.

실망을 머금었던 오늘의 나는

비로 세상의 때를 씻김 한 까마중 열매에 산뜻해졌다. 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을 머금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기우다.

남산돈가스 집 직원이 내가 까마중을 따먹는 것을 본 것 같다. 즐겁다.

어서 강의실로 돌아가야지.

총총 계단을 내려가는 나는 좀 신났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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