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중1
(20250913)
하늘 가득 물 먹은 회색 구름이 밤새 비를 내렸다. 일기예보에서는 하루 종일 많은 비가 내린다고 했다. 애정하는 주황색 운동화 대신 짧은 장화를 신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구름의 무게 때문일까? 어제의 피로가 안 풀린 것 때문일까? 잠을 설친 것 때문일까?
목과 어깨가 뻣뻣하기만 하다.
명동역 4번 출구역 정류장에 내린 나는 희미하게 날리는 빗방울을 안 맞으려 우산을 펼친다.
그리고 비탈길을 오른다. 9시가 되기 전, 목멱산 서울 N타워를 보며 올라간다.
늦깎이 학생은 오늘 졸음과 처절히 싸울 것이다.
점심 이후 2교시를 마치고 뛰쳐나와 걸어본다. 몽롱한 정신을 차려보려 몸도 뒤틀어본다. 예보와는 다르게 회색구름이 사라지고, 새하얀 솜털들이 하늘에 흩어져 흐르고 있다. 깊은 쪽빛은 청량하다. 뻑뻑한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졸음을 깨우기에는 부족하다.
숭의대학교 평생교육원의 건물 앞마당은 계단과 바닥이 돌이다. 정원수가 있는 화단을 빼고 잡풀이 거의 없다. 허리를 숙여 스트레칭을 하던 나의 눈에 작은 풀 한 포기. 다섯 개의 꽃잎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것 봐라!
건물 입구의 경계석과 진입바닥석 사이에 제법 튼튼한 굵기의 작은 까마중이 서있다.
작지만 단단한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작은 꽃을 찍기 위해 렌즈를 가까이, 초점을 맞추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버튼을 누르고는 띠리링 하는 사진 찍기 완료를 알리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움직임이 없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거리조절 실패로 포커싱이 안되어 초점이 흐릿한 사진은 단 한 장. 다섯 장을 건졌다.
까마중의 열매는 참 맛있다. 신맛이 먼저 찾아와 단맛이 혀를 감싸고 산뜻한 여운이 남는다. 구슬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사라지듯 녹아버리는 검정색에 가까운 보라색의 열매다. 풀이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는 흔한 풀.
8살 서울에 이사 오고 엄마가 이름을 알려줬다. 우연히 집 가까이 공터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먹어보라며 따주던 엄마였다. 동생들과 빠끔살이('소꿉놀이' 전라도 사투리)할 때면 빨간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라고 하고, 납작한 돌을 가져다 접시라 칭하였고, 까마중을 찾아다녔다. 진짜로 먹을 있어서 좋았던 놀라운 놀잇감이었다. 어찌나 잘 자라는지, 크게 자라면 7살 동생 키 만하게 자라서 가지가 갈라지는 마디마다 대여섯 개의 열매 다발을 매단 줄기가 있었다. 열매 다발은 작은 흑진주가 여덟 개까지도 달렸다. 따먹고 다음날에 찾아가면 또 따먹을 수 있었고, 잊고 있다가 찾아가면 두 손 가득 따서 먹느라 혓바닥과 입술, 손가락까지 거무죽죽하게 물들였다.
지금 나는 파아란 하늘보다 돌바닥에서 만난 꼬꼬마 까마중이 그렇게나 좋다.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