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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링 Jun 27. 2023

에어컨

엄마와 다 큰 딸



내 방에 에어컨이 생겼다.





  우리 집에는 20년 된 거실형 에어컨 한 대가 있다. 그간 에어컨 한 대로 세 식구가 49평에서 살면서 더운 것보다도 불편한 것은 여름엔 방문을 열어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실에 에어컨을 틀고 에어 써큘레이터로 장풍을 쏴서 내 방에 에어컨 바람을 직송해 주는 것이 우리 가족의 막내딸 보호법이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바람을 한 가닥이라도 더 얻어내려면 방문을 열어 두어야 해서 내 공간이 중요한 나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에어컨을 틀어도 방문을 닫고 방 안에서 사우나 체험을 했던 날들이 꽤 된다.



  엄마는 최근 맘에 쏙 드는 작은 에어컨을 찾았는지 어떻게든 내 방에 놔주고 싶어 전전긍긍해했다. 언제 어디서 엄마에게 '딸 방에 에어컨'이라는 명령어가 입력된 건진 모르겠다. 긁어 부스럼이라며 선풍기만 틀어도 시원하다고 됐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그럴까' 한 마디에 엄마는 결재를 받았다는 듯 부리나케 에어컨을 주문했고, 이틀 뒤 퇴근해 보니 내 방에 에어컨이 달려있었다. 번갯불에 콩 볶듯 달린 에어컨은 처음엔 어색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내 거절해 온 것이 무색할 만큼 또 그전엔 도대체 어떻게 살았는가 싶을 정도로 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문을 닫고 쾌적하게 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건데, 몸이 뽀송하니 자주 움직여 먼지와 머리카락을 치우고 주변 정리정돈을 하는 것은 물론 공부를 하러 구태여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되어 시간도 간식비도 절약하게 되었다. 물론 단점도 있는데 '여기가 천국이다'라며 하루에 한 번씩 내 방에 쳐들어오려고 하는 엄마아빠를 내쫓는 일이 조금 성가신 정도다. 아무래도 거실 에어컨은 전력을 많이 소모하고 데워진 온 집을 식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틀기가 부담스러운데 내 방 작은 에어컨은 전기세 부담도 덜한 데다가 트는 순간 방 안을 빠르게 냉동 창고로 만들어 거의 매일 틀어두기 때문이다.



  서른이나 먹은 딸 방에 에어컨을 넣어주고는 뿌듯해하는 엄마의 마음을 나는 평생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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