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면
지난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치앙마이로 보름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여행을 추억하며 일상의 힘을 얻고 있다.
예고도 계획도 없이 찾아오는 낭만은
여행을 더욱 설레고 기다려지게 만든다.
태어나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은 스무 살의 유럽이었다. 첫 여행에서 랜드마크도 맛집도 아닌 런던에서 길을 잃었던 한 새벽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타워브릿지 주변을 관광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이었다. 정류장에서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기다리다 보니 시각은 자정을 넘어섰고, 영국의 여름밤이 그렇게 추운 줄 그날 밤에 알았다.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데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도 방전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택시는 아예 탈 생각조차 못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우버 같은 건 없던 시절이다.
발만 동동 구르다 새벽 1시가 넘었다. 이러다 길에서 죽겠다 싶어 용기를 내어 지나가는 버스를 붙잡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집 가는 길을 물었더니 기사는 친히 버스에서 내려 열정적으로 집에 가는 법을 알려주었다. 안전하게 집에 잘 도착하라고 위로와 응원까지 해 주면서 말이다. 기다리는 승객들도 불평 하나 없었다. 서울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덕분에 집에 잘 도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지나가던 한 영국 아저씨가 대화를 들었는지 자기도 그 정류장으로 간다며 따라오라고 길을 안내해 주었다. 친절한 아저씨랑 말벗 삼아 걸으며 웃다 보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더라. 걷는 길에 여우 두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총총 뛰었다. 길여우를 처음 보는 나는 놀라서 저게 뭐냐 물었고 아저씨는 영국엔 원래 길여우가 많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서울엔 길고양이가 많은데 길여우는 방금 처음 봤다고 했고, 아저씨는 길에 어떻게 고양이가 있냐며 자기가 더 놀라워했다. 우리는 같이 웃었다.
나는 그날 밤 차갑던 공기의 감촉, 버스 기사의 걱정하는 눈망울, 영국 아저씨의 플란넬 셔츠와 따뜻한 목소리, 길여우의 보송한 털, 새벽 3시가 되어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터져 나오던 눈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여행이 더 즐겁고 재밌어졌다.
이후로 여행을 가면 용기를 내어
먼저 웃으며 안부를 묻고
인사를 건네보려고 노력했고,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대화는
나를 좀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어둡고 칙칙했던 내가
여행을 다닐수록 점점 밝고 선명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참 좋았다.
교사가 되고 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고 예쁜 시기에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었다. 나는 그 덕분에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교사가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세 번째로 찾아간 치앙마이는 따뜻하고 바삭한 날씨와 따가운 햇살로 나를 반겨 주었다.
어렸을 땐 세계의 여러 나라를 도장 깨기 하듯이 돌아다니는 게 좋았다. 그런데 조금 더 나이를 먹으니 갔던 곳을 또 가는 재미가 있다. 어느 정도 아는 곳이라 알아볼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지난번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발견하며 그 지역과 좀 더 친밀해지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치앙마이에서는
매일 느지막이 일어나
주변 식당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하고
자전거를 타며 하루를 열었다.
녹음진 카페나 고양이가 있는 시원한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노트북을 하면서 여유를 부리다가
지겨워질 때쯤 그랩 바이크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마켓으로 갔다.
이것저것 쓸데없는 것들을 괜히 사제끼고는
다시 동네로 돌아와 타이마사지나 발마사지를 받고
흐물흐물해진 상태로 저녁을 먹고 쉬었다.
다시 심심해질 때쯤이면
가끔은 카페에서 동행을 구해서
펍에 가서 맥주 한 잔을 함께했다.
그러다 보면 전 세계 사람들과 친해져서
웃고 떠들게 되었고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즉흥으로 재즈바에 가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야시장에 가서 길거리 음식을 사 먹기도 하면서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 잠에 들었다.
치앙마이의 올드타운은 크기가 작아서
구석구석 발 닿는 대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유유자적 돌아다니기 좋다.
불교문화, 휴양지 감성, 히피 스트릿 무드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재밌는 곳이다.
님만해민 쪽으로 넘어가면
조금 더 발전된 도시의 모습을,
창푸악 쪽으로 가면
조금 더 현지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현지 사람들은 따뜻하고 여유롭고 친절하고
전 세계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 같이 코끼리 바지를 입고 돌아다닌다.
이번 치앙마이에서는 처음으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며 풍등 날리기를 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해였는데, 역시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
12월 31일 밤에 치앙마이 카페에서 동행 3명을 구해서 타패 게이트로 향했다. 모두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새해를 해외에서 맞는다는 설렘으로 우리는 모두 조금씩 들떠 있었고 금세 친해졌다. 길거리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차량을 통제한 거리에 사람이 가득 들어섰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풍등을 사다가 삼삼오오 날리기 시작했다. 풍등 날리기를 하는 줄 몰랐던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길거리에는 한몫 당기려는 상인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풍등을 샀다. 한국 돈으로 500원쯤 되는 금액을 깎아 보겠다고 한 상인이랑 괜히 웃으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은 그 상인의 아이들과도 친해지게 되어서 맥주 한 잔씩을 더 팔아 주었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풍등 날리는 방법을 물어보았는데, 한 대머리 아저씨가 경험이 많은지 팔을 걷어붙히고는 친절하게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나의 풍등은 뜨거운 바람을 가득 싣고 하늘 높이 빠르게 솟아올랐다. 풍등을 사지 못한 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어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구경을 했다. 풍등이 날아가는 순간에는 다함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러 주었다. 그때 느꼈던 벅찬 감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진다. 풍등을 날리며 올해 꼭 유학을 떠나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비록 소원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다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리라 믿고 있다.
다가오는 2월에
호주와 함께
네 번째 치앙마이를 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네 번째 치앙마이에서는
어떤 에피소드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