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오신 날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입사동기에게 이미 스무 해쯤 전에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던 비유를 또 끄집어내어 들려주었다.
”결혼하면서 인생이 A에서 A’로 변한다면, 아이를 낳고 난 후의 삶은 A가 아니라 B가 되는 거야. “
결혼과 동시에 2세 계획도 있다는 그녀에게 나는 마냥 핑크핑크한 말을 해 줄 수는 없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는 핑크 하기만 한 세상은 없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었다. 혹은 그 나이의 나는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것일까.
“어느 날인가는 그냥 누워있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누가 목을 세게 조르는 것처럼 숨이 턱 막히는 거야. 그때 왜 그랬냐면, 불현듯 생각이 들었었거든. ‘아, 나는 이제 엄마가 아닌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네.’
기혼자가 싫으면 이혼을 하면 되는데, 한번 엄마가 되면 그건 무를 수가 없거든.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야. 하하하. “
실제로 그랬다.
나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몇십 톤쯤 되는 듯한 무게가 가슴과 목을 짓누르는 것을 실제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분명히 느꼈던 것이다.
한 번 엄마는 영원히 엄마야.
이 순간 그 느낌이 되새김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저 이제 삼 개월 차 된 새내기 직장인일 뿐인데. 남들이 진부하게 표현하는 쳇바퀴, rat race에 발을 들였다는 것이 이제야 조금 와닿기 시작한 것일까.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많은 면에서 살 만큼 살아봤고, 겪어 본 불혹의 나이가 아닌가. 어디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으면 나는 괜찮을 것이다. 엄마가 아닌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패닉 하지 않으면 나는 괜찮을 것이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지겨울 수 있는데 그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는 면접 질문에도, 나는 어디서든 무엇이든 새로운 배울 거리나 집중할 것을 찾는 편이라고 답했었다. 그건 사실이니까.
불현듯 훅 치고 들어오는 생각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나이. 그런 생각을 애써서 물리치지도 않는 나이. 오는구나, 가는구나, 평정심을 찾는 것이 그래도 조금은 덜 어려운 나이. 불혹의 나이에 새내기 직장인이 된 나는, 육십 번 조금 넘게 탄 출근 기차 안에서 글을 쓰며 숨을 고르며, 가슴을 누르던 무게를 슬쩍 옆으로 밀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