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의 기차
“여기엔 자리가 없으니까 서서 가야 해. 이쪽에 와서 여길 잡아.”
익숙한 억양의, 익숙한 성량의 여자의 목소리다. 아마도 유치원 혹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을 이끌고 런던으로 스쿨트립을 다녀가는 거겠지. 피곤해서 뒤를 돌아볼 기운도 없다.
조금은 억센 억양의 그녀는 큰 소리로 계속 말한다.
“당근 먹을래? 당근 좀 먹어. 손이 하나 남잖니 봉을 잡아. 누구 당근 먹을 사람? “
아기 같은 목소리로 저요, 저 요가 들린다.
애쓴다. 처음 생각은 그거였다. 어린아이들을 이끌고 야외 수업을 다녀오느라 애쓰고, 애들에게 초콜릿이나 감자칩을 주지 않고 당근을 먹이느라 애쓰고.
그런데 그녀는 입을 다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동료 선생인 듯한 목소리와 계속 떠든다. 애들에게도 계속 말을 한다.
불현듯, 건강한 간식도 간식이지만, 기차 안에서 조용히 가는 공공예절은 가르칠 생각이 없는 걸까.
내가 왜 이 칸에 앉았을까 후회하게 만드는 그녀의 끝없는 수다에 지쳐가는 것은 나 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헤드폰을 쓴 사람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난 앞을 향한 채 이어폰은 왜 두고 왔을까 안타까워하며 애처롭게 한 손으로 한 귀를 막고 다른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읽으며, 최소한 읽으려고 애쓰며, 그녀를 견뎌내었다.
며칠 전에 쇼츠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기차가 얼마나 조용한지 감탄하는 장면이었다. 구랬나? 한국 기차가 조용했었나? 기억을 더듬었었다.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 그랬었나 보구나…
드라마와 영화들이 생각이 났다. 이런 자잘한 일상의 분노가 쌓이고 쌓여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면 살인을 저지르는 상상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는 그들이.
나도 상상을 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돌아서서,
선생님, 아이들 데리고 애쓰시는 건 알겠는데, 선생님이면 공공예절도 지켜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이들이 뭘 배우겠어요? 이렇게 내 목소리만 들리는 기차라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옳소, 맞아요! 하고 동조를 할까?
아니면 못 본 척, 못 들은 척 고개만 숙이고 있을까?
아마도 후자에 가깝겠지. 저 억양의, 저 성량의 여자라면, 선생이라 할지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 덤비겠지.
어디서 내리는지라도 물어볼까?
그때, 그녀가 아이들에게 말한다.
“이제 곧 내리니까 준비해요. “
할렐루야.
아마 나 말고 최소 스무 명은 속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싶다.
왼쪽문이 열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기차 내부에서 점점 작아지다 바깥에서 들리게 되자, 나는 고개를 돌려 밖을 보았다.
그녀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저 또 다른 두 명의 엄마와 유모차와 꼬맹이들을 데리고 탄 시끄러운 대장 엄마였다.
그녀가 내려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서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선생님도 아닌데 저런 포스를 가진 여자와 맞붙었다면 승산은 그냥 제로다.
‘뭐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때로는 무서워서 피하기도 하지.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