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쪼아대기의 기술
일이 바쁘지 않은 월 초다.
일이 바쁠 때에도 힘이 들지만 사실 나는 일이 없는 것도 만만치 않게 견디기 힘들다. 할 일이 그다지 없지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하고, 사실 보지도 않으면서 두 개의 모니터에 이 창 저 창 잔뜩 열어놓고 손가락 운동만 한다. 당연히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한다.
시간이 남으면 남의 일도 들여다보다가 참견도 한다. 안다, 나도. 이것은 정말 최악인걸.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 좋은 점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낯짝이 좀 두꺼워지는 것. 온 세상의 눈치를 보고, 모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이십 대의 나는. 이제야 좀 편하게 세상을 내편에 두고 산다.
나의 쪼아댐 혹은 참견은 이제 막 들어온 신입 친구들에 대한 어미새 같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들, 혹은 조카뻘의 그들이 뒤에서 욕을 한다 한들, 그것은 니들이 알아서 하라고 속으로 허락한다. 아니, 자기도 신입이면서 누구에게 뭘 쪼아대나 싶겠지마는, 할 수 있다. 내 옆자리에 팀원으로 합류한 새댁에 따르면 나는 ‘웃으면서 교묘하게 쪼아대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사실 나의 쪼아댐은 쪼아댐이 아니라 질문 형식을 띤 챙김이다. 우리 애들에게는 ‘이것, 저것 하라‘는 식의 명령형으로 시켰다면 회사 후배들에겐-그렇다, 내 뒤로 후배가 벌써 생겼다- ‘이것은 뭔가요? 이거 언제까지였죠? 혹시 답이 왔나요? 혹시 이메일로 물어봐 줄 수 있어요?’처럼 질문으로 쪼아댄다. 꼰대? 맞다. 인정. 신입도 중년이면 꼰대 신입이 될 수 있다.
다만 나는 나름 매우 순박하고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 정말 모르는 것처럼 묻는다. 너무 궁금한 표정으로. (그들이 속는 줄 알지? 사실 속아주는 거야..라고 한대도 정말 동요가 되지 않는다. 아, 나는 너무 좋다, 중년의 내가.)
선배라고 예외는 없다. 선배이지만 어리바리해서 손이 많이 가는 어린 선배들에게도 질문은 이어진다. 대신 존중과 존경의 톤은 유지한다. ‘제가 이게 헷갈리는데, 이게 원래 이렇게 되는 게 맞아요?(내가 보기에 이거 네가 잘못한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러는데,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랬죠? (또 막판까지 미뤄서 모두를 동동거리게 하지 말고 미리미리 챙겨주겠니?) 이렇게 연락이 늦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어떻게 하면 되겠니? 손 놓고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으로 먼저 연락 좀 해줄래?)처럼 가르쳐 달라는 투로 묻는다. 물론 답을 알고 물을 때도 있고 정말 몰라서 물을 때도 있다.
정말 상투적이지만 젊은이들을 보면 왜 그렇게 내 아들 같고 딸 같은지. 혼나는 모습 보면 짠하고, 어리바리 헤매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자취하는 그들이 대견하고 짠해서 거국적으로 ‘어머님들’ 직원들을 선동하여 ‘비빔밥 데이‘, ‘분식 데이‘같은 행사를 벌여 집밥을 먹인다. 물론 한 번씩 외식도 시켜준다. 런던 밥값이 살인적이라 자주는 못하지만.
이제 입사한 지 두어 달 된 신입 청년들이, 혹은 만난 지 일 년이 채 안된 선배 청년들이 언제까지 나를 봐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진심은 통한다고 믿고 싶고 밥 한 끼라도 더 먹이고 싶다. 아직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쁘지마는, 그들이 나중에 떠올렸을 때 내 첫 직장에서 이모 같은 선배가 있어서 밥도 잘 얻어먹고 편했다는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다. 때론 좀 꼰대 같더라도. 나중에 우리 딸도 첫 직장에서 밥 못 먹여서 안달 난 꼰대 신입을 만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