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사이코

출근길 드라마

by 수리양

얼마 전에 틱톡에서 난리가 났던 영상이 있었다. 미국의 한 지하철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이었던 스물세 살의 여성이 묻지 마 공격을 받고 숨을 거둔 사건이었다. 흉기로 목을 가격 당한 피해자는 잠시 충격에 얼었다가 이내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며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주변에 있던 이들은 하나 둘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결국 고꾸라져 피를 흘리며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너무 끔찍한 사건이고 슬픈 소식이었다. 소셜미디어에 소식을 공유한 사람들은 가해자의 무차별한 잔인함과 동시에 피해자를 방치한 주변인들의 무관심에 분노했다. 일부 사람들은 버스나 기차를 타면 가장 끝 자리 벽 쪽으로 앉아야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공격을 가한 남자가 여성의 뒷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런던 뉴스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칼부림 사건 사고 소식이다. 작년에는 등굣길에 한 소년이 칼부림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고작 열두 살이던 그는 지인의 아들이 다니는 학교 학생이었다. 사건의 전말을 더 자세히 알게 된 지인이 전한 교훈은 ‘아이들 이어폰/헤드폰 조심시키자 ‘였다. 그녀에 따르면, 피해 학생이 학교에 가기 위해 등굣길에 올랐을 때, 부근에서 가해자를 발견한 주변 사람들이 아이에게 ‘돌아가라, 조심하라, 도망쳐라’를 외쳤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귀를 감싸는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어서 위험경고를 듣지 못했고 결국 희생양이 되었다는 거다.


길을 돌아다니는 정신 나간 살인자가 아니더래도 차나 자전거 사고 위험 때문에 우리 애들은 진작부터 이어폰은 길에서 금지다. 어릴 때 큰 위험을 당할 뻔 한 나도 뒤에서 덮치는 사람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웬만하면 이어폰을 쓰지 않거나 한쪽만 쓴다.


걱정이 많은 우리 집 둘째는 칼부림 사건으로 도배되는 런던 뉴스 때문에, 원래도 무서워서 런던에 가기 싫다고 할 정도였는데 이제 엄마가 매일 런던으로 출퇴근을 하니 매일 밤 인사가,

‘조심히 갔다 조심히 와요 ‘ 가 되었다.

늘 태연하게 답을 하지만 뉴스가 떠들썩한 날엔 나도 모르게 주위를 더 살피게 되는 게 사실이다.



덜 복잡한 이른 기차를 타고 덜 복잡한 지하철에 올랐다. 심지어 자리도 있어서 앉았다. 코트가 덜 구겨지게 얌전히 앉고, 백팩을 앞으로 돌려서 무릎에 올려놓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감정이 없는 텅 빈 눈이었다. 나는 어색함에 괜히 시계를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는데도 그의 시선은 나에게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떨구었다가 다시 봐도 여전히 그대로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너만 쳐다볼 줄 아냐, 나도 눈 있다.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나는 여차하면 말로 물어볼 작정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나의 깡이 느껴졌는지 그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잠시 후 워털루-시티라인 지하철의 유일한 역이자 종착역인 뱅크역에 다다랐다. 그가 일어선다. 일어서게 둔다. 나는 그의 앞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뒤에서 지켜볼 터였다.


지하철이 토해낸 사람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간다. 거대한 물줄기처럼. 나는 그의 뒤에서 걷는다. 내 앞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나눠지는 개찰구. 왼쪽은 무빙워크, 오른쪽은 계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왼쪽으로 간다. 나는 주로 오른쪽으로 가는데 그도 오른쪽 줄에 선다. 바로 뒤에 섰다. 그가 통과하고 나도 통과한다. 널따란 계단 언덕을 그가 오른다. 나는 바로 뒤를 따른다. 이 계단 끝에서 많은 이들이 왼쪽으로 가고 나는 오른쪽이다. 그는 어디로 갈까?


계단이 끝나고 무빙워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다른 지하철 노선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그 가운데 그는 오른쪽으로 간다.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여러 출구로 통하는 길이 최소 세 개가 나온다 나는 두 번째 통로다. 첫 번째 통로를 그가 지나친다. 두 번째는 내 통로인데…

그가 두 번째 통로를 지나 직진을 한다. 나는 안도하며 두 번째 통로로 들어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늘 안도하는 순간에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국룰이 아니던가.



그가 가던 발길을 돌려 나의 통로로 들어온다. 마치 내가 계속 자기를 눈여겨보며 뒤를 따른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비스듬한 미소를 띠고 있다. 나의 벌어진 입에서 밭은 숨이 터져 나오고 심장이 내려앉는다. 서늘한 그의 얼굴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갑자기 바닥에 눌어붙기나 한 듯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선이 내려가 꽂힌 그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있다.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다니 진짜 사이코는 내가 아닐까?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