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준비한 최고의 선물은…

부모는 아직도 자라는 중

by 수리양

14년 전 10월 마지막주에 난 남몰래 마음을 졸였었다.


예정일이 10월 30일. 하루만 늦으면 31일 할로윈인데…할로윈은 피하고 싶은데…

내 조용한 바람을 들었던 것인지 둘째는 딱 예정일에 맞춰서 10월 30일에 태어났다. 그때부터 아이는 엄마 마음을 헤아려주는 착한 아이였나 보다.


큰 아이와 꽉 찬 네 살 터울로 태어난 둘째는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귀여운 막내였다. 많은 집의 둘째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집 둘째도 큰아이 보다 애교도 많고 표현도 잘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경력직 부모가 된 우리 부부는 첫째 때보다 조금은 더 여유 있게, 조금은 더 너그럽게 둘째를 키웠다.


한국에서 태어나 만 일곱 살까지 자란 둘째는 자기 생일을 너무나 좋아했다. 돌잔치를 시작으로, 매년 기본 서너 번 이상의 생일 파티를 했다. 수많은 동네 이모들과, 진짜 이모와 친척들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친구들과, 동네 친구들과,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생일파티에 케이크도 여러 개, 선물도 산처럼 받았다.


어느 해에는 생일날 밤에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기도 했는데, ’ 생일이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쉬워서 ‘라고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며,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며 난 대리 만족을 했고, 자기가 태어난 것이 이렇게나 좋다니, 다행스러웠고, 부러웠다.


감정표현을 잘하는 둘째는 원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많아서 그런 것도 곧잘 말로 표현을 했다.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길고 긴 리스트를 만들었다. 무언가를 원하는 것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도 별로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참 신기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차라리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편한 것이라는 걸.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단골 멘트가 생겼다.

‘몰라요.’ ‘아니, 괜찮아요 ‘.

어디를 갈까 물어도, 무엇을 먹을까 물어도 ‘잘 모르는 ‘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그저 생각하는 게 귀찮은 것 같았고, 그다지 의욕이 생기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밝고 상냥하기만 했던 아이가 사춘기가 오자 우울해하고 걱정이 많은 십 대가 되니 뭔가 배신감마저 들었다. 결국 너마저…


아마도 반복된 에피소드들이 쌓여서 그랬던 것 같다. 물어도 모른다거나 상관없다는 답이 돌아오니, 점점 안 묻게 된 것 같다. 아무리 부모래도 자꾸 거절당하거나 거부당하면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는지, 무언가를 제안하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건 사실 큰아이의 사춘기에 생긴 작은 생채기들이 아직 아물지 않아 되레 겁을 집어먹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는 중이다.

왜 올해 생일에는 뭘 받고 싶은지 묻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다. 나는 물어보는데 지쳐서 안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럴싸한 답은, 갑자기 워킹맘이 된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시간’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필 하프 텀 방학 중간에 생일이 껴서, 안 그래도 방학에 혼자 집에 있게 되는데 생일날에도 혼자 있게 할 생각에 그날에 어떻게든 집에 같이 있어야겠다고, 그것에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작 생일 선물은 생각도 못한 게 분명하다. 월말에는 너무 바빠서 눈치껏 피해서 휴가를 쓰기에, 30일 하루를 빼기 위해 미리 공을 들여야 했다. 그래서 까먹은 거다. 선물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가 한 2년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식당을 미리 예약했다. 섬나라이지만 해산물이 제일 비싼 영국에서 저녁에 해산물을 먹으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기에 특별한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거였다. 그렇게나 원하던 ‘시푸드 보일’이라는, SNS에 수없이 나오던 그 음식을 먹게 해 주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했다. 그래서 까먹은 거다. 선물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생일날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이가 뚱한 얼굴로 건너왔다. 생일축하한다는 말에도 반응이 영 좋지가 않다. 잠시 곁에 누웠다가는 다시 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자가 왔다.

‘생일인데 생일선물이 없네.‘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생일 선물이 없네.

뒤늦게 뭘 원하는지 물어보는 나에게 싸늘한 답이 왔다.

‘늦었어요. 생일 선물은 생일에 여는 거지.‘


생일 선물이 없다는 걸 어떻게 바로 알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됐다. 선물을 기대하면서 포장지가 있는 창고 안 사진을 찍어두고 포장지가 움직이는지를 살피고 있었다고 사진까지 나중에 보여줬다. 물론 한바탕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난 후에 조금 기분이 풀렸을 때 알려줘서 알았다. 마음이 찢긴 기분이었다. 그렇게나 설레면서 매일 확인했을, 그리고 실망했을 너…

넌 아직 아이인데 나는 어느새 그걸 잊었네. 미안했다.


내가 준비한 최고의 선물은 나의 시간이었는데, 결국 이건 내 시점에서, 내 기준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사춘기는 혼란에 빠진 ‘아이’라는 것을 잊었다. 너무 훌쩍 크게 느껴져서 아직 애 같은 면이 있는 걸 잊었다. 미안했다.


사실 더 미안했던 건, 내가 내 해명을 했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선물을 묻는 걸 잊은 이유는… 으로 시작해서 어렵사리 만들어낸 하루의 휴가와 머릿속으로 그린 함께 보내는 하루를 이야기하며 내가 준비한 제일 큰 선물이 시간이었다는 것을, 미안함에 대한 변명으로 내 해명을 했다. 이것이 이 착한 아이의 마음에 죄책감을 가져왔다.


시푸드 보일 저녁은 서프라이즈 역할을 제대로 했지만 밤이 찾아오자 아이는 또 손가락을 자기에게 향하며 나는 엄마의 진심을 몰라주고 선물 없다고 투정한 아이라며 울었다. 그 어떤 선물보다 엄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한데 미안했다고 울었다. 울고 싶었다.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말걸. 변명 같은 거 하지 말걸.


그러나 붙잡고 있지 않기로 했다. 미안함도 묻어두기로 했다. 배웠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감사하기로 했다. 이렇게나 마음이 따뜻한 아이라서 감사하다. 또 하나 배우게 되어 감사하다. 아이도 나도 한 뼘 더 자라서 감사하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