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반차

by 수리양

영국의 학교엔 간혹 인 셋 데이라 부르는 휴교일이 있다.


INSET (In-Service Education and Training) day is a professional development day for school staff, meaning children do not attend school.
INSET(교직원 연수) 데이는 교직원을 위한 전문성 개발(연수) 일로, 학생들은 등교하지 않습니다.


학교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휴교일로 어떤 때에는 징검다리 연휴에 들어가기도 하고 오늘 같은 학교의 특별한 날- 예를 들면 개교기념일 같은-이 주말인 경우에 월요일이 인 셋 데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먼저 알기도 하고 학교 뉴스레터에 나오기도 하는데 수많은 이메일 가운데 누락되기라도 하면 가끔 달력에 옮겨 적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서프라이즈로 다가오기도 한다.


다행히 이번 인 셋 데이는 내가 미리 발견했다. 그래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가를 내려고 날짜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북토크 콘서트. 이미 한 달도 전에 예매해 놓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 출간 기념 드로잉 콘서트가 예정된 날이다. 물론 저녁시간이긴 한데 휴가를 썼다가 콘서트를 위해 일부러 런던에 나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귀찮다.


그리하여 반차를 내기로 했다. 얼마 되지 않는 휴가를 쪼개서 반일씩 쓰는 건 워킹맘에겐 필수 아닌 필수다. 반차를 내면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아이와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길 수 있다. 아이에게 맡기던 해피 산책도 내가 할 수도 있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해피 산책을 시키고 저녁 콘서트를 위해 화장도 좀 신경 써서 하고 옷도 예쁜 걸로 골라 입고… 브런치를 먹고 나는 회사로 출근.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느긋하게는 일어났다. 여덟 시간이나 잤으니 잘 잔 셈이다. 비가 오고 있다. 날씨앱에 따르면 오후에는 갠다. 앱을 보여주고 딸아이에게 산책을 부탁했다. 산책대신 저녁이나 만들어 놓을 생각에 부엌에 들어갔다. 괜히 들어갔다. 저녁만 간단히 만들어 놓으려다 다음날 반찬까지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조금만 꼼지락거리면 식구들 먹거리가 생기니 중간에 멈출 수가 없다.


결국 반찬을 잔뜩 만들어놓고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준비할 시간은 약 이삼십 분. 뛰어올라가서 씻고 이것저것 두세 벌 옷을 입어보다 시간관계상 마지막 입은 옷을 입기로 한다. 화장은 기본만 하고 색조는 가방에 넣어 가져가자. 와중에 해피 밥은 냉장고에서 꺼내서 일단 덜어서 실온에 둔다. 나중에 아이가 살짝 데워서 주면 된다. 머리는 빗지도 않고 질끈 묶은 채 엄지발톱이 곧 뚫고 나올 것 같은 스타킹을 대충 신고 향수로 급 마무리.


비를 뚫고 동네 카페에 도착했다. 새로 생긴 작은 카페 천장엔 꽃들이 활짝 피었고 벽엔 꼬르동블루 졸업장이 한가득이다. 최대한 여유를 되찾고 아이와 브런치를 먹었다. 먹는 시간은 늘 생각보다 짧게 걸려서 기차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다. 같이 슈퍼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주고 아마존 반품도 픽업도 하고서 집에 다시 데려다주었다. 어젯밤에 둘이서 조립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미션을 아이에게 남긴 채 차를 돌려 나온다.


잠시 고민한다. 택배 픽업이 하나 더 남았는데… 시간이 엄청 여유롭지는 않지만 가능은 해 보이는데… 지금 가면 내일 일부러 가지 않아도 되긴 하지…

핸들을 꺾어 택배가 도착한 상점으로 방향 전환.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주차장에 도착. 잠깐 들렀다 나올 건데 주차비 내기가 아까워서 무료 주차칸이 비었는지 가본다. 시간도 없다며 왜 그러냐고 스스로를 나무라며 두 개밖에 없는 무료 주차칸이 비었겠냐고 혼을 내고 결국 아무 칸에 주차를 한다.


빗속을 달려 상점에 도착. 택배가 도착했다는 이메일은 왜 갑자기 안 보이는지. 무인 택배 스크린에 이름을 써봐도 내 이름은 왜 못 찾을까.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이메일을 찾아내기에 성공. 바코드를 찍었다. 딩동댕~ 하는 소리가 작은 핸드셋을 통해 들린다. 짹 각 짹 각… 시간은 흐르는데 소식이 없다. 다급한 마음에 옆 통로에 물건을 채우고 있는 점원에게 묻는다. 그녀는 잠시 기다리면 뉴군가 안에서 들고 나올 거라고 말해준다. 믿어도 될까…

잠시 후 택배를 들고 나타난 청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 서둘러야 한다.


마지막 택배까지 찾고 서둘러 도착한 기차역. 차가 빼곡해서 저 멀리 주차를 하고 왔다. 아직 기차 시간은 남았는데 주차요금을 결제하는 앱이 말썽이다. 뭐 때문이지. 마음은 급하고 손가락은 허우적대고 날씨 때문인지 인터넷마저 느리다. 아,,, 택배는 포기하고 일찍 올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오는 사이 결제 성공.


기차에 올라앉았다. 월요일 오전 반차를 쓰고 열두 시 기차를 탔는데 몸과 마음은 어째 금요일 저녁 기차를 탄 것 같다. 이미 하루를 다 보낸 기분인데 이제 출근이라니. 나의 여유로운 반차는 어디로 가고 나는 또 아침 내내 동동거렸는지.

그래도 반찬도 만들어 놨고 택배 반춤과 픽업도 다 해냈고 아이와 브런치도 먹었다. 참 알차게도 꽉꽉 채워 넣은 나의 오전 반차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