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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양 Apr 07. 2023

아쉬테드 빌리지의 연예인,
로비 스톡스씨를 소개합니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영국아재

‘수, 내가 다음 주에 한국에 가게 되었는데,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추천해 줄 수  있을까?’

한국의 카톡처럼 영국에서 국민 메신저 역할을 하는 왓츠앱으로 로비가 톡을 보내왔다.


‘한국? 언제? 얼마나? 혼자? 아니면 애들도? 학기 중인데?’ 


밑도 끝도 없이 난데없이 한국에 간다는 그의 말에 나는 질문세례를 보냈고 그제야 그는 자기 친구가 방송을 하는데 초대를 해줘서 혼자 약 일주일간 한국에 가게 되었다고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를 주었다.


그가 짧게 보낸,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그가 친구가 하는 방송, 예를 들면, ‘영국남자’와 같은 유튜브 채널의 촬영을 구경하러 한국에 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나의 개인적인 몇몇의 추천 여행지와 약간의 검색 후 정리한 몇 가지 액티비티와, 추천 음식들을 보내주었다.  


얼마 후, 그의 페이스북에 한국 여행 사진이 올라왔다. 스무 장이 넘는 사진과 함께, 한국에 사는 친구의 초대로 한국을 여행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며 앞으로 한국사진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이 넘쳐날 것을 예고했다. 그런데 글 말미에 방송이 나가는 유튜브 채널이름을 ‘MBC every1’이라고 쓴 것이 아닌가. MBC? 그냥 유튜브가 아니고 MBC? 


그제야 전에 잠시 카페에 들러 물어봤을 때, 자기도 잘은 모르는데 무슨 ‘웰컴 투 코리아’ 그런 이름의 방송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웰컴 투 코리아… 웰컴 투 코리아… 어서 와… 어서 와 한국은?  그랬다. 그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이 한국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전혀 몰랐기에 나에게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부터 로비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한국에서 보낸 멋진 시간들과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찼고, 아쉬테드 빌리저들은 부러움과 놀라움의 답글과 질문들을 달았다. 얼마 후에는 예고편이 나왔다며 유튜브 링크도 올라왔다. 내 추측대로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이 맞았다. 방송을 보니 이번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영국 아재들의 일상 탈출 휴식’이기에 로비와 친구들은 5성급 호텔에 묵고, 마사지와 골프를 즐기는 등, 내가 추천한 인사동 방문이나 노량진 수산시장 방문과는 성격이 다른 럭셔리 홀리데이를 즐기고 온 것 같다. 


본방이 시작되고 영국에서 유튜브를 통해 방송을 본 일부 지인들이 우리 동네에 유명 셰프가 하는 카페가 있다며 아느냐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방송의 힘이 이렇게 크다. 그들은 로비의 카페가 재작년 나의 한식 브랜드 Seoul 2 Soul의 한식 테이크 어웨이를 했던 바로 그 카페인 것은 몰랐던 것이다. 내가 장사를 한 것은 알았어도 그 장소가 로비의 카페인 줄은 몰랐던 이들이 여럿 되었나 보다. 


로비 역시도 한국 방송의 힘을 경험하고 있었다. 로비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국인들의 방문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주로 동네장사를 하는 로비의 이 작은 카페로 방송을 본 한국인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속의 한국, 뉴몰든 한인타운에서부터 30분가량 운전을 해서 찾아온 그들은 로비와 인증샷을 찍고 방송이야기를 나누고 간다고 했다.


인구 만 사천명의 작은 빌리지 카페 주인 로비는 한국의 공영방송 유명 프로그램에 출연한 유명세를 이렇게 치르고 있었다. 찾아온 한국인들도 이 시골 마을 카페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신기했겠지만, 그 역시도 이 상황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인 손님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인증샷들을 자신의 피드에도 개제를 하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와이 낫. 즐기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며칠 전에는 한국방문 기념으로 자신의 카페에서 한식 스페셜 메뉴를 선보인다고 페이스북에 피드가 올라왔다. 워낙에 카페 내부 공간이 작아 테이블이 몇 개 없는 관계로 미리 스페셜 메뉴 예약을 받았다. 나는 로비의 스타일로 재창조되는 한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방송을 보고 로비를 보고 싶어 하던 지인을 초대할 생각에 테이블을 예약했다. 


이틀 동안 스페셜 메뉴로 진행되는 한식 점심메뉴에는 두바이 7성 호텔 총괄셰프 출신의 영국 아재가 재구성한 세 가지 스타일의 닭고기 요리와 함께 나의 Seoul 2 Soul 배추김치가 제공되었다. 김치를 가져다주며, 예약이 많이 들어왔는지 묻자, 준비한 예약 수량은 완판 되었고, 대부분이 한국 손님들인 것 같다며, 살짝 긴장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드디어 스페셜 런치 첫날. 나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여 걸려 도착한 지인을 기차역에서 픽업해서 로비의 카페로 갔다. 아담한 크기의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고, 한쪽 구석에 우리를 위한 테이블도 세팅되어 있었다. 로비는 바쁘게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RYE카페의 케이크 공급처로 시작해 이제는 로비의 여자친구가 된 에밀리가 열심히 홀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다. 


스페셜메뉴는 정해진 세트메뉴이기에 예약과 동시에 주문이 들어가서 우리가 앉자 곧 첫 번째 닭고기 요리가 나왔다. 에그누들이 들어간 닭고기 수프였다. 이어서 쌀밥, 시금치 반찬과 배추김치,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닭고기 요리가 차례로 나와 한상이 차려졌다. 두 번째 닭고기 요리에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는데, 그건 바로… 닭발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서 닭발을 딱 한번 먹어보았는데 한국에 살 때 매운 닭발 열풍이 너무 궁금해서 먹어보았던 것이다. 뼈가 제거된 채 매콤한 소스에 버무려져 나왔었는데 뼈가 없었음에도 손바닥처럼 보이는 닭발의 모습을 극복하지 못한 나는 몇 입 먹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었다. 그런데 내 인생 두 번째 닭발을 영국 시골의 카페에서 먹게 되다니. 심지어 이 아이들은 뼈도 그대로 있었다. 너무나 다행히도 나의 동행이 야무지게 뼈를 발라 맛있게 먹어주어 접시를 클리어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닭요리는 코리안 프라이드치킨, 양념치킨 비슷한 모습의 요리였다. 건식 빵가루를 입혀 튀긴듯한 치킨은 기름지지 않아 담백했고, 양념은 처음에는 색깔만 보고 우리가 아는 양념치킨의 양념인 줄 알았는데 먹다 보니 된장맛도 가미된 듯했다. 함께 나온 두 가지 소스 중 하나는 매콤한 칠리소스였고 또 하나는 방송에서 로비가 반해버린 쌈장소스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가 배합해서 만든 쌈장인데 본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맛있게 만든, 그러나 콩 건더기 없이 스무스하며 묽기는 일반 쌈장보다는 치키너겟을 찍어먹는 머스터드소스나 바비큐 소스처럼 보였다. 


우리 말고도 스페셜을 시킨 테이블이 몇몇 보였는데 그중에 한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나를 보고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죠? 김치를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하고 인사를 하셨다. 센스만점 나의 지인은 문을 나서는 손님을 향해 큰소리로 ‘김치 판매도 하고 있어요. 주문하세요.’ 하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매우 안타깝게도 나는 작은 아이에게 코감기를 옮아 코가 막혀서 음식맛을 100퍼센트 느끼지 못했다. 코맹맹이 소리로 지인에게 여기에서 혹시 된장맛이 나는지, 카레맛은 안 나는지 확인을 해 가며 먹었다. 바쁘게 음식을 하는 와중에도 로비는 홀에 나와 사람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거나 특유의 아재개그를 날렸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카페가 조금 한산해져서 우리는 로비와도 한국에서의 경험이 어땠는지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이었는지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그가 꼽은 최고의 음식은 아침식사로 먹었던 복국이었다. 복요리를 먹은 것도 처음인 데다 아침부터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생소하게 들렸던 복국의 시원함이 영국 아재를 사로잡은 모양이다. 


새로 담은 김치를 가져다주면서 신김치로 볶음김치도 조금 나눠주었었다. 김치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지만, 익어가면서 맛이 달라져서 각 단계에서 다양한 음식을 해서 먹을 수 있는 아주 활용도가 높은 음식이라고 알려주었다. 원래도 음식에 관심이 많은 셰프였겠지만 한국에 다녀온 후로 한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로비에게 나도 더 다양한 한식을 소개할 생각에 즐겁다. 로비도 뉴몰든 한인타운에서 어느 식당을 가면 좋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식재료에 대해서도 종종 질문을 보낸다. 


한식의 세계화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요즈음. 셰프도 아니고 집밥이 주 종목인 주부인 나이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영국 셰프 한 명에게 한국음식의 맛과 멋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미천한 지식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한식의 세계화에 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봄이 오면, 나는 작년에, 재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숲으로 명이나물을 따러 갈 거다. 산마늘이라고도 하는 명이나물을 따다가 맛간장에 맛있게 장아찌로 만들어서 로비에게 나눠줄 거다. 한국의 깻잎 씨앗도 심어서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면 그것도 나누어 줄 거다. 그도 나도 아는 공통어는 영어도 한국어도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싶은 마음. 그게 우리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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